62 요한1서

62 요한1서 5장 16-21절끝 (7월) - "하느님께 맏아우(형제)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쭙고, 스스로를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킵시시오."

예수스 2022. 7. 26. 03:17

62 요한1서 5장 16-21절끝 (7월) - "하느님께 맏아우(형제)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쭙고, 스스로를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킵시시오."

  때: 2021년 4월 21일(수). 부활절 셋째주 성북로교회 수요기도회 
  곳: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로 161번안길 174-5번 성북로교회

1. 2 요한1서 5장 16-21절끝 (7월) 얼게 - "다섯가지 머시기를 아는 (교회) 우리는 두 가지를 하십시오."

   - 먼저 (교회) 우리가 다섯 가지나 아는 이들의 모둠살이입니다. 
    ①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아니 빗나갑니다는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를 살피주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들 끼리, 곧 교회 안에서 서로를 살펴줍니다. 
    ② 교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하느님과 나쁜놈의 틈, 사이라는 올무,올가미,덫, 모순에 놓혀있다는 것을 압니다.
    ③ 교회 우리는 참되신, 참이신 하느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오신다. 오실 것을 압니다. 
    ④ 교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이신, 참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해주신 것을 압니다.
    ⑤ 교회 우리는 '참된 그(참된 이) - 하느님' 안에, '참된 그(참된 이)[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하느님이시요, 그리고 끝없는(늘) 삶입니다. 
 - 교회 우리는 참되신, 참이신 하느님 안에, 그리고 참이신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또한 참 하느님이시며, 그래서 끝없는(늘) 삶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 다음으로 (교회) 너희가 할 두 가지는 이러합니다.
    ① 마주보기 - 1금 5:16-17  (16. 17.) (교회) 너희 사이에서 할 일 - 교회의 긋(낱) 사이에서 마주보기 - (교회) 너희 사이에서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 맏아우를 보이면, 그만, 그냥, 그저, 하느님께 맡기며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쭈십시오.
    ② 홀로서기 -  3금 5:21-21 끝  (21. 끝) (교회) 너희 안에서 할 일 - 교회의 긋(낱)의 홀로서기 - 교회 너희/우리는 스스로를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키십시오."

  7월 NA5:16-21 끝  393쪽
    1금 5:16-17  (16. 17.)
    2금 5:18-20  (18. 19. 20.)
    3금 5:21-21 끝  (21. 끝)

  - 물음? -
    - 모든 아니바른 것은 빗나간짓(죄)요, 이 빗나간짓(죄)은 죽음을쪽으로 가는 것과 삶을쪽으로 가는 것으로 갈래되는데, 이를 갈래하는 잣대는 무엇입니까? 그 잣대는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 빗나간짓(죄)이 아니 죽음을쪽으로 가는 빗나간짓(죄)인지, 죽음을쪽으로 가는 빗나간짓(죄)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 (교회) 우리는 맏아우(형제)가 빗나간짓(죄)를 저질렀다면, 왜 그(하느님)께 여쭈여야 합니까?
    - 맏아우(형제)가 빗나간짓(죄)를 저질렀는데, 그것이 아니 죽음을쪽으로 가는 빗나간짓(죄)이라면 하느님께서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쭈라고 하고, 죽음을쪽으로 가는 빗나간짓(죄)에 대해서는 아니 여쭈라고 하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 사람마다 하느님께로부터 낳아진 이와 아니 하느님께로부터 낳아진 이, 곧 나쁜놈으로 갈래됩니까?
    - 하느님께로부터 낳아진 이는 아니 빗나갑니까(아니 죄짓습니까)? 어찌하여 그럴 수 있습니까?
    - 하느님께로부터 낳아진 이가 하느님께로부터 낳아진 이를 살펴보는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 나쁜놈이 하느님께로부터 낳아진 이를 아니 얼씬거린다(알랑거린다,집적대다,집적거리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어찌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 (교회) 우리가 "하느님께에서부터 와 있다' 또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말미암아 있다'[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다. 
   - "온 누리(세상,우주)는 나쁜놈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다. 
   - (교회) 우리는 한쪽으론 "하느님께에서부터 와 있다' 또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말미암아 있다'[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이고, 다른쪽으로는 누리(우주,세상) 안에 있음으로 나쁜놈 안에 있는 것도 됩니까? 
   - 그렇다면 (교회) 우리는 누리(우주,세상) 안에 있으니 나쁜놈과 하느님의 틈사이에 있는 것도 되고, 나쁜놈과 하느님의 아래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 (교회) 우리는  '참된 그(참된 이)', '참된 이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참된 하느님' 그리고 '끝없는(늘) 삶'에 대해 그리고 이들 사이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

   - (교회) 우리에게 '개하느님들'[하느님으로 여기는몬[物].헛개비,검불,꼴뜬것,우상(偶像)]은 무엇입니까?
   - (교회) 우리는 스스로를 '개하느님들'[하느님으로 여기는몬[物].헛개비,검불,꼴뜬것,우상(偶像)]로부터 지켜야 합니까?

  1) 1금 5:16-17  (16. 17.) 교회의 긋(낱) 사이의 마주보기 - (교회) 너희 사이에서 남에 대해서 할 일 -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 맏아우가 보이면, 그냥 하느님께로 가서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쭈십시오"
  2) 2금 5:18-20  교회의 온, 모두의 아는 일 - (교회) 우리가 온, 모두로서 알아야 할 거리 - "(교회) 우리는 이렇게 다섯 가지나 아는 이들의 모둠살이입니다." 
  3금 5:21-21 끝  (21. 끝) 교회의 긋(낱)의 홀로서기 - (교회) 너희 안에서 스스로에 대해서 할 일 - "스스로를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키십시오."

2. 요한1서 5장 16-21절끝 (7월) 새김 그리고 개역개정판(1998) - "하느님께 맏아우(형제)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쭙고, 스스로를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킵시오."

  1) 1금 5:16-17  (16. 17.) (교회) 너희 사이에서 할 일 - 교회의 긋(낱) 사이에서 마주보기 - "(교회) 너희 사이에서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 맏아우를 보이면, 그만, 그냥, 그저, 하느님께 맡기며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쭈십시오."
  - 빗나간짓에는 죽게 되는 것과 아니 죽게 되는 것으로 갈래 됩니다. 그래서 설마(아마) 맏아우가 죽게 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것을 보면 그것에 대해 하느님께 여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설마(아마) 맏아우가 아니 죽게 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것을 보면
하느님께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물으십시오.
  - 누가 교회 안에서 보는 맏아우가 하는 짓이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를 따질 수 있습니까? 그 어떤 짓이 빗나간짓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 빗나간짓인데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를 따찌는 일은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느님의 구실이 아닙니까? 이것은 교회(온으로서 교회)의 구실이 아닙니까?
  -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교회를 이루는 긋(낱,부분,구성원)으로서 교인인 누구라도 이녁이 보기에 맏아우가 언뜻 빗나간짓이라고 여겨지면, 그것을 헐뜯거나, 떠벌리거나, 따지거나, 고치겠다고 설치거나(정죄)하는 것을 멈추고, 이녁이 보기에 빗나간짓을로 보이는 맏아우의 짓을 그만, 그냥, 그저 하느님께 들고 가서 여쭙는 것이 교회 안에서 마주보기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맏아우의 짓을 따지고, 올바르게 하는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리하면 교회 안에는, 서로 사이에 서로에 대해 푸념,넋두리, 헐뜯음, 투덜거림, 말다툼이 아니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고요가 있을 것입니다.
  -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는 누리 안에 있는 어떤 모둠살이와 다른 거룩한 모둠살이가 됩니다.

  - 그런데 교회 안에서 맏아우의 짓에 관해 교회(온으로서 교회)가 굳이 따져야할 때 다음처럼 합니다. 

 - 교회 내 치리에 대한 잣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태복음 18장 15-17절입니다.
15 네 형제가 4)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어떤 사본에, 네게 죄를)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둘째, 디모데전서 5장 17-21절입니다.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ㄱ)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ㄱ, 신 25:4)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참고 :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2017, 제102회 총회에서 제정된 교회정관(표준))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2)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2, 또는 그려면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니 곧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에게니라)
17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1기림노래 :  맏아우를 위해 하느님께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쭈십시오.- 218.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2) 2금 5:18-20  교회의 온, 모두의 아는 일 - (교회) 우리가 온, 모두로서 알아야 할 거리 - "(교회) 우리는 이렇게 다섯 가지나 아는 이들의 모둠살이입니다." 

  교회 우리(온,모두,전체)가 알고 있는 다섯 머시기는 이러합니다.
    ①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아니 빗나갑니다[아니 빗나간짓(죄)을 저지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를 살피주기 때문입니다. 맏아우가 빗나간짓을 아니 저지르도록 서로가 '마주보기'를 잘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쁜놈이 그에게 아니 가까이합니다. 나쁜놈이 그에게 아니 얼씬거립니다. 합니다. -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를 살피줍니다."는 두 가지로 새김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인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의 아우인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 곧 '교회'를 살펴줍니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들 끼리, 곧 교회 안에서 서로를 살펴줍니다. 어느 새김을 하든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는 맏아우 사이로서, 서로를 살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가 마주보기를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교회라는 모둠살이는 이 누리(세상,우주) 안에서 모둠살이 하나이면서도, 다른 어떤 모둠살이와 다른 모둠살이임을 말합니다.곧 '하느님께 빗나간짓을 아니 저지르도록 마주보기를 하는 끈끈한 사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를 이루는 이(긋, 낱,구성원,교인,크리스챤)는 누리 안에 여러 모둠살이의 긋(낱,구성원)으로 있지만, 이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으뜸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는 하느님께서 피붙이(친가,외가,처가-시가), 학연(동창회), 지연(향우회), 동아리(친목동아리, 학습동아리 등등) 등등에서부터 불러내여 모둔 모임, 모둠살이(모두삶,공동체)입니다.] 
    ② 교회 우리는 '하느님께에서부터 와 있다' 또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말미암아 있다'[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누리(세상,우주)는 나쁜놈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 교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하느님과 나쁜놈의 틈, 사이라는 올무,올가미,덫, 모순에 놓혀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리(세상,우주) 가운데 있기게 나쁜놈 안(아래,함께)에  있으면서, 또한 하느님께에서부터 와 있다' 또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말미암아 있다'[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임으로 하느님 안(아래,함께)에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 우리는 하느님과 나쁜놈의 틈, 사이라는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등)에서 제대로 서 내는 것이 일거리입니다. 하느님과 나쁜놈의 틈, 사이라가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등)이라는 것은 에서 제대로 서 내자면, 먼저 하느님과 나쁜놈의 사이가 느(음)과 기(양)의 사이로서 다섯 갈래의 사이라는 것입니다. - 이 사이를 다섯 가지로 새긴다는 것은 느기결(음양론, 변증법적 격물론, 또는 동양적 변증법)로 풀이하는 것입니다.) [서양적 변증법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어떤 사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느리라) - 로마서 8:28 옮김 "그러나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그)을 사랑하있는 그들에게, 그 과녁(목적)을 따라 불러진 그들에게, 모든 것들이 참한 것을쪽하여(향하여) 함께도웁니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박서호, 1991, “큰 학문(大學)은 학문의 학이다 : 변증법적 격물론,” 『한남대학교(사회과학)논문집』 제21집. 131-167쪽.) 이는 하느님과 나쁜놈 사이가 "첫째, 하느님과 나쁜놈은  같은 때(동시), 같은 자리(공존)에 있습니다. 둘째, 그렇지만 하느님과 나쁜놈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나쁜놈은 서로 다릅니다.(하느님과 나쁜놈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그런데 하느님은 나쁜놈으로 바뀝니다.(그런데 하느님은 (탈바꿈하여) 나쁜놈으로서 구실을 하십니다.) 넷째, 그러고 나니 이 참에는 나쁜놈은 하느님으로 바뀝니다.(나쁜놈은 (탈바꿈하여) 하느님으로서 구실을 합니다.) 다섯째 그리하여 하느님과 나쁜놈은 서로가 같습니다.(그렇다면 하느님과 나쁜놈이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이렇게만 생각했다면, 여기에 빠져있다면, 이와 같이 설마(아마) 다섯가지 갈래 가운데 어느 한 곳에 빠져 있다면 이는 올무, 올가미, 덫, 모순(갈등) 속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에 빠져있다,", "문자주의에 빠져있다.", "이분법에 갇혀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가락 끝을 보라고 하는데, 손가락 끝을 보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아니 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져있다면, 벗어나는 길은 멈추어선 그 자리에서 다음자리로 옮기면서 하느님과 나쁜놈의 사이 다섯 갈래를 빙글빙글(나선적 상승) 돌리는 것입니다. 어느 것에 갇히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지는 것이니,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섯 갈래의 뺑뺑이를 되풀이하면서 돌리는 것입니다.

    ③ 교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이르신다(오신다.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 교회 우리는, 참되신, 참이신 하느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오신다. 오실 것을 압니다. 
    ④ (하느님의 아들인) 그가 교회 우리에게 '참된 그'(참된 이)를 알아차리도록 생각을 주셨다. -  교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이신, 참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해주십니다.
    ⑤ 교회 우리는 '참된 그(참된 이) - 하느님' 안에, '참된 그(참된 이)[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하느님이시요, 그리고 끝없는(늘) 삶입니다. 
 - 교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되신, 참이신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참 하느님이심을 압니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살[肉]로된 사람 사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다.', '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니 보이는 하느님(아버지)께서 보이는 살로된, 사람(아들)을 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 보이는 하느님(아버지)과 보이는 살로된, 사람(아들)이 '같은 이', '한 이, 또는 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하느님(하늘에 계신 아버지)과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하느님의 아들) 사이는 다섯 가지로 새길 수 있습니다. 이 사이를 다섯 가지로 새긴다는 것은 느기결(음양론, 변증법적 격물론, 또는 동양적 변증법)로 풀이하는 것입니다.(출처 : 박서호, 1991, “큰 학문(大學)은 학문의 학이다 : 변증법적 격물론,” 『한남대학교(사회과학)논문집』 제21집. 131-167쪽.) 이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 사이가 "첫째,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같은 때(동시), 같은 자리(공존)에 있습니다. 둘째, 그렇지만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서로 다릅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하느님은 하느님의 아들이 됩니다.(그런데 하느님은 (탈바꿈하여) 하느님의 아들로서 구실을 하십니다.) 넷째, 그러고 나니 이 참에는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이 됩니다.(하느님의 아들은 (탈바꿈하여) 하느님으로서 구실을 합니다.) 다섯째 그리하여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서로가 같습니다.(그렇다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이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이렇게만 생각했다면, 여기에 빠져있다면, 이와 같이 설마(아마) 다섯가지 갈래 가운데 어느 한 곳에 빠져 있다면 이는 올무, 올가미, 덫, 모순(갈등) 속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에 빠져있다,", "문자주의에 빠져있다.", "이분법에 갇혀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가락 끝을 보라고 하는데, 손가락 끝을 보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아니 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져있다면, 벗어나는 길은 멈추어선 그 자리에서 다음자리로 옮기면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 사이 다섯 갈래를 빙글빙글(나선적 상승) 돌리는 것입니다. 어느 것에 갇히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지는 것이니,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섯 갈래의 뺑뺑이를 되풀이하면서 돌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3)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3, 어떤 사본에, 난 자가 자기를 지키매)
19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기림노래 : (교회) 우리는 이렇게 다섯 가지나 아는 이들의 모둠살이입니다. - 600. 교회의 참된 터는  

  3) 3금 5:21-21 끝  (21. 끝) 교회의 긋(낱)의 홀로서기 - (교회) 너희 안에서 스스로에 대해서 할 일 - "스스로를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키십시오."
  - 개하느님(우상)에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 하나는 아니 보이는 하느님(알기 어렵고)을 보이는 몬(物)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느님(알기 쉽고)으로 여기며 절하는(엎드리며, 섬기며, 기리며,높이며,예배하며 등등) 것입니다. 이는 눈으로 보려고 하느님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을 아니 보이는 하느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짓은 '사람의 눈에는 아니 보이는 하느님'을 '사람이 눈으로 보게 만들어 놓은 하느님의 꼴'로 바꿔치기 하는 짓입니다. 이것은 이녁이 알기 어려운 하느님을 아니 알려고 하면서, 그냥 이녁이 알기 쉽게, 이녁의 생각에 맞추어 이것이 하느님이라고 만들어 놓은 하느님 아닌 것으로 가름하는 것입니다. 
  - 다른 하나는 이녁의 하고잡, 하고픔,하고싶음,욕망,욕심,욕정,탐심,탐욕 때문에 이녁이 마땅히 해야할것(마땅함,구실)을 아니 하는 것입니다. 이 짓은 위와 아래, 앞과 뒤, 안과 밖, 먼저할 것과 나중할 것 등에서 마땅한 차림(우선순위,우선순거)이 있는데 그것을 뒤집어 버리는 짓입니다. 위와 아래, 으뜸과 꼴찌, 우아래[참고 :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covetousness 8, greediness 1,covetous practice, idolatry,플레오넥시아4124)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 idolatry 4,the worship of false gods,에이돌롤라트레이아1495)니라.] 
  - 스스로를 이와 같은 두 갈래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키는 길에는 두 가닥이 있습니다. 첫째 가닥은 아니 보이는 하느님과 보이는 하느님 사이, 마땅히 해야할구실과 하고잡(하고픔,하고싶음,욕망,욕심,욕정,탐심,탐욕) 사이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둘째 가닥은 아니 보이는 하느님과 보이는 하느님 사이, 마땅히 해야할구실과 하고잡(하고픔,하고싶음,욕망,욕심,욕정,탐심,탐욕) 사이에 깔려있는 다섯 갈래 사이(앞에서 말한 다섯 갈래의 느기결)에서 어느 올무에 아니 빠지도록 물음을 되풀이 하면서 뺑뺑도는 것입니다. 셋째 가닥은 다섯갈래 물음의 뺑뺑이를 돌리면서, 이녁이 하느님으로 여기는 것에서 아니 보이는 하느님에로, 이녁이 하고싶은 하고잡에서 마땅히 해야할 것에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리하다보면 이녁의 보이는 하느님에서 아니 보이는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며, 이녁의 하고잡에서 이녁의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21 자녀들(복수.)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3기림노래 : (교회) 너희는 스스로를 개하느님들(우상)로부터 지키십시오. - 322.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 마무리   - * 고요의 한 마디 - "교회 우리는 다섯 머시기를 알기에, 두 길을 따라 교회 우리를 세워갑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모둠살이(모두삶), 모임(조직, 사회)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긋(낱,부분) - 긋(낱,부분)의 사이 - 온(모두, 전체) 입니다.
  5:16-17은 '긋(낱,부분)의 사이'에 관한 것, 곧 교회를 이루는 이(긋,낱) 사이에서 '마주보기'가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할 일입니다. 5:18-20은 '온(모두,전체)'에 관한 것으로 '알고 있는 것'(또는 알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5:21-21은 '긋(낱,부분)'에 관한 것, 곧 교회를 이루는 이(긋,낱)이 '홀로서기'를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5:16-21 (7월)은 키아즘틀로서 이렇게 짜여집니다.러

    5:16-17   긋(낱) 사이의 '마주보기'를 위해 해야 할 일
        5:18-20 온(모두,전체)이 아는 일(또는 알고 있어야 할 일) 
    5:21-21   긋(낱)의 '홀로서기'를 위해 해야 할 일 
   
  이래서 이렇게 새겨봅니다.

  먼저 교회 우리(온,모두,전체)가 알고 있는 다섯 머시기는 이러합니다.
    ①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아니 빗나갑니다[아니 빗나간짓(죄)을 저지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를 살피주기 때문입니다. 맏아우가 빗나간짓을 아니 저지르도록 서로가 '마주보기'를 잘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쁜놈이 그에게 아니 가까이합니다. 나쁜놈이 그에게 아니 얼씬거립니다. 합니다. -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를 살피줍니다."는 두 가지로 새김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인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의 아우인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 곧 '교회'를 살펴줍니다.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들 끼리, 곧 교회 안에서 서로를 살펴줍니다. 어느 새김을 하든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는 맏아우 사이로서, 서로를 살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서로가 마주보기를 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교회라는 모둠살이는 이 누리(세상,우주) 안에서 모둠살이 하나이면서도, 다른 어떤 모둠살이와 다른 모둠살이임을 말합니다.곧 '하느님께 빗나간짓을 아니 저지르도록 마주보기를 하는 끈끈한 사이'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를 이루는 이(긋, 낱,구성원,교인,크리스챤)는 누리 안에 여러 모둠살이의 긋(낱,구성원)으로 있지만, 이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으뜸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는 하느님께서 피붙이(친가,외가,처가-시가), 학연(동창회), 지연(향우회), 동아리(친목동아리, 학습동아리 등등) 등등에서부터 불러내여 모둔 모임, 모둠살이(모두삶,공동체)입니다.] 
    ② 교회 우리는 '하느님께에서부터 와 있다' 또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말미암아 있다'[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누리(세상,우주)는 나쁜놈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 교회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하느님과 나쁜놈의 틈, 사이라는 올무,올가미,덫, 모순에 놓혀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리(세상,우주) 가운데 있기게 나쁜놈 안(아래,함께)에  있으면서, 또한 하느님께에서부터 와 있다' 또는 '하느님께에서부터 말미암아 있다'[하느님께 속한다]는 것임으로 하느님 안(아래,함께)에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 우리는 하느님과 나쁜놈의 틈, 사이라는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등)에서 제대로 서 내는 것이 일거리입니다. 하느님과 나쁜놈의 틈, 사이라가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등)이라는 것은 에서 제대로 서 내자면, 먼저 하느님과 나쁜놈의 사이가 느(음)과 기(양)의 사이로서 다섯 갈래의 사이라는 것입니다. - 이 사이를 다섯 가지로 새긴다는 것은 느기결(음양론, 변증법적 격물론, 또는 동양적 변증법)로 풀이하는 것입니다.) [서양적 변증법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로마서 8장 28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어떤 사본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느리라) - 로마서 8:28 옮김 "그러나 우리가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그)을 사랑하있는 그들에게, 그 과녁(목적)을 따라 불러진 그들에게, 모든 것들이 참한 것을쪽하여(향하여) 함께도웁니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박서호, 1991, “큰 학문(大學)은 학문의 학이다 : 변증법적 격물론,” 『한남대학교(사회과학)논문집』 제21집. 131-167쪽.) 이는 하느님과 나쁜놈 사이가 "첫째, 하느님과 나쁜놈은  같은 때(동시), 같은 자리(공존)에 있습니다. 둘째, 그렇지만 하느님과 나쁜놈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나쁜놈은 서로 다릅니다.(하느님과 나쁜놈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그런데 하느님은 나쁜놈으로 바뀝니다.(그런데 하느님은 (탈바꿈하여) 나쁜놈으로서 구실을 하십니다.) 넷째, 그러고 나니 이 참에는 나쁜놈은 하느님으로 바뀝니다.(나쁜놈은 (탈바꿈하여) 하느님으로서 구실을 합니다.) 다섯째 그리하여 하느님과 나쁜놈은 서로가 같습니다.(그렇다면 하느님과 나쁜놈이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이렇게만 생각했다면, 여기에 빠져있다면, 이와 같이 설마(아마) 다섯가지 갈래 가운데 어느 한 곳에 빠져 있다면 이는 올무, 올가미, 덫, 모순(갈등) 속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에 빠져있다,", "문자주의에 빠져있다.", "이분법에 갇혀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가락 끝을 보라고 하는데, 손가락 끝을 보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아니 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져있다면, 벗어나는 길은 멈추어선 그 자리에서 다음자리로 옮기면서 하느님과 나쁜놈의 사이 다섯 갈래를 빙글빙글(나선적 상승) 돌리는 것입니다. 어느 것에 갇히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지는 것이니,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섯 갈래의 뺑뺑이를 되풀이하면서 돌리는 것입니다.

    ③ 교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이 이르신다(오신다.오셨다)는 것을 압니다. - 교회 우리는, 참되신, 참이신 하느님의 아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오신다. 오실 것을 압니다. 
    ④ (하느님의 아들인) 그가 교회 우리에게 '참된 그'(참된 이)를 알아차리도록 생각을 주셨다. -  교회 우리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이신, 참되신 하느님, (하느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심)을 알게 해주십니다.
    ⑤ 교회 우리는 '참된 그(참된 이) - 하느님' 안에, '참된 그(참된 이)[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예수 그리스도)는 참된 하느님이시요, 그리고 끝없는(늘) 삶입니다. 
 - 교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되신, 참이신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참 하느님이심을 압니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라는 말이 됩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살[肉]로된 사람 사이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다.', '한 사람이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니 보이는 하느님(아버지)께서 보이는 살로된, 사람(아들)을 낳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 보이는 하느님(아버지)과 보이는 살로된, 사람(아들)이 '같은 이', '한 이, 또는 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 하느님(하늘에 계신 아버지)과 하느님께에서부터 낳아진 이(하느님의 아들) 사이는 다섯 가지로 새길 수 있습니다. 이 사이를 다섯 가지로 새긴다는 것은 느기결(음양론, 변증법적 격물론, 또는 동양적 변증법)로 풀이하는 것입니다.(출처 : 박서호, 1991, “큰 학문(大學)은 학문의 학이다 : 변증법적 격물론,” 『한남대학교(사회과학)논문집』 제21집. 131-167쪽.) 이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 사이가 "첫째,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같은 때(동시), 같은 자리(공존)에 있습니다. 둘째, 그렇지만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사이에 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서로 다릅니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셋째, 하느님은 하느님의 아들이 됩니다.(그런데 하느님은 (탈바꿈하여) 하느님의 아들로서 구실을 하십니다.) 넷째, 그러고 나니 이 참에는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이 됩니다.(하느님의 아들은 (탈바꿈하여) 하느님으로서 구실을 합니다.) 다섯째 그리하여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은 서로가 같습니다.(그렇다면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이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이렇게만 생각했다면, 여기에 빠져있다면, 이와 같이 설마(아마) 다섯가지 갈래 가운데 어느 한 곳에 빠져 있다면 이는 올무, 올가미, 덫, 모순(갈등) 속에 빠져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문자에 빠져있다,", "문자주의에 빠져있다.", "이분법에 갇혀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손가락 끝을 보라고 하는데, 손가락 끝을 보고,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달을 아니 보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져있다면, 벗어나는 길은 멈추어선 그 자리에서 다음자리로 옮기면서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 사이 다섯 갈래를 빙글빙글(나선적 상승) 돌리는 것입니다. 어느 것에 갇히면 올무,올가미,덫, 모순(갈들)에 빠지는 것이니,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다섯 갈래의 뺑뺑이를 되풀이하면서 돌리는 것입니다.

   - 다음으로 이런 다섯가지를 알고 있는 교회 너희/우리가 해야 할 두 가지는 이러합니다.

    ① 마주보기 - 1금 5:16-17  (16. 17.) (교회) 너희 사이에서 할 일 - 교회의 긋(낱) 사이에서 마주보기 - (교회) 너희 사이에서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 맏아우를 보이면, 그만, 그냥, 그저, 하느님께 맡기며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여쭈십시오.

  - 빗나간짓에는 죽게 되는 것과 아니 죽게 되는 것으로 갈래 됩니다. 그래서 설마(아마) 맏아우가 죽게 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것을 보면 그것에 대해 하느님께 여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설마(아마) 맏아우가 아니 죽게 되는 빗나간짓을 저지른것을 보면
하느님께 그에게 삶을 주시라고 물으십시오.
  - 누가 교회 안에서 보는 맏아우가 하는 짓이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를 따질 수 있습니까? 그 어
떤 짓이 빗나간짓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 빗나간짓인데 아니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 죽게되는 빗나간짓인가를 따찌는 일은 누가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하느님의 구실이 아닙니까? 이것은 교회(온으로서 교회)의 구실이 아닙니까?
  - 그래서 교회 안에 있는, 교회를 이루는 긋(낱,부분,구성원)으로서 교인인 누구라도 이녁이 보기에 맏아우가 언뜻 빗나간짓이라고 여겨지면, 그것을 헐뜯거나, 떠벌리거나, 따지거나, 고치겠다고 설치거나(정죄)하는 것을 멈추고, 이녁이 보기에 빗나간짓을로 보이는 맏아우의 짓을 그만, 그냥, 그저 하느님께 들고 가서 여쭙는 것이 교회 안에서 마주보기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맏아우의 짓을 따지고, 올바르게 하는 것을 하느님께 맡기는(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리하면 교회 안에는, 서로 사이에 서로에 대해 푸념,넋두리, 헐뜯음, 투덜거림, 말다툼이 아니 일어날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고요가 있을 것입니다.
  - 이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로서 교회는 누리 안에 있는 어떤 모둠살이와 다른 거룩한 모둠살이가 됩니다.

  - 그런데 교회 안에서 맏아우의 짓에 관해 교회(온으로서 교회)가 굳이 따져야할 때 다음처럼 합니다. 

 - 교회 내 치리에 대한 잣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태복음 18장 15-17절입니다.
15 네 형제가 4)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어떤 사본에, 네게 죄를)
16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17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둘째, 디모데전서 5장 17-21절입니다.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18 성경에 일렀으되 ㄱ)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ㄱ, 신 25:4)
19 장로에 대한 고발은 두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 
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참고 :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측, 2017, 제102회 총회에서 제정된 교회정관(표준))

    ② 홀로서기 -  3금 5:21-21 끝  (21. 끝) (교회) 너희 안에서 할 일 - 교회의 긋(낱)의 홀로서기 - 교회 너희/우리는 스스로를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키십시오."
  - 개하느님(우상)에는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 
  - 하나는 아니 보이는 하느님(알기 어렵고)을 보이는 몬(物)로 만들어 놓고, 그것을 하느님(알기 쉽고)으로 여기며 절하는(엎드리며, 섬기며, 기리며,높이며,예배하며 등등) 것입니다. 이는 눈으로 보려고 하느님이라고 만들어 놓은 것을 아니 보이는 하느님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 짓은 '사람의 눈에는 아니 보이는 하느님'을 '사람이 눈으로 보게 만들어 놓은 하느님의 꼴'로 바꿔치기 하는 짓입니다. 이것은 이녁이 알기 어려운 하느님을 아니 알려고 하면서, 그냥 이녁이 알기 쉽게, 이녁의 생각에 맞추어 이것이 하느님이라고 만들어 놓은 하느님 아닌 것으로 가름하는 것입니다. 
  - 다른 하나는 이녁의 하고잡, 하고픔,하고싶음,욕망,욕심,욕정,탐심,탐욕 때문에 이녁이 마땅히 해야할것(마땅함,구실)을 아니 하는 것입니다. 이 짓은 위와 아래, 앞과 뒤, 안과 밖, 먼저할 것과 나중할 것 등에서 마땅한 차림(우선순위,우선순거)이 있는데 그것을 뒤집어 버리는 짓입니다. 위와 아래, 으뜸과 꼴찌, 우아래[참고 : 골로새서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covetousness 8, greediness 1,covetous practice, idolatry,플레오넥시아4124)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 idolatry 4,the worship of false gods,에이돌롤라트레이아1495)니라.] 
  - 스스로를 이와 같은 두 갈래 개하느님(우상)으로부터 지키는 길에는 두 가닥이 있습니다. 첫째 가닥은 아니 보이는 하느님과 보이는 하느님 사이, 마땅히 해야할구실과 하고잡(하고픔,하고싶음,욕망,욕심,욕정,탐심,탐욕) 사이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둘째 가닥은 아니 보이는 하느님과 보이는 하느님 사이, 마땅히 해야할구실과 하고잡(하고픔,하고싶음,욕망,욕심,욕정,탐심,탐욕) 사이에 깔려있는 다섯 갈래 사이(앞에서 말한 다섯 갈래의 느기결)에서 어느 올무에 아니 빠지도록 물음을 되풀이 하면서 뺑뺑도는 것입니다. 셋째 가닥은 다섯갈래 물음의 뺑뺑이를 돌리면서, 이녁이 하느님으로 여기는 것에서 아니 보이는 하느님에로, 이녁이 하고싶은 하고잡에서 마땅히 해야할 것에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리하다보면 이녁의 보이는 하느님에서 아니 보이는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며, 이녁의 하고잡에서 이녁의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 우리는 든든하게 서 갑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