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히브리서

히브리서 6장 13-20절 (8월) - "교회 우리는 우리의 임자들이 교회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갖습니다."

예수스 2020. 8. 12. 19:12

58 히브리서 6장 13-20절 (8월) - "교회 우리는 우리의 임자들이 교회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갖습니다." 


  때: 2020년 8월 12일(수). 성령강림절 뒤 열째 주 성북로교회 수요기도회 
  곳: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로 161번안길 174-12번


1. 히브리서 6장 13-20절 (8월) 얼게 - "우리는 아브라함, 하느님, 그리고 예수가 가진 세 갈래 바람들을 대물림하여 가지고 있습니다." -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빌고 빌 것이며, 늘리고 늘릴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 하느님이 가지시는 바람은 하느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대물린이들에게 이녁의 뜻을 아니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 예수가 가진 바람은 우리의 빗겨난짓을 깨끗하게 하려고 고때까지 대제사장이 되어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하느님을 뵙는 것처럼 우리가 들어와서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 물음? 
  - 교회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누구의 어떤 것입니까?
      - 교회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이녁의 하고픔, 남이 이녁에게 해주길 바라는 하고픔인가?
      - 교회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이녁의 임자들이 가지신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들이 이녁에게 해 내길 바라는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들이 이녁이 가져으면 하는 바람인가? 

 
  8월 NA6:13-20  (1314:15. 16:17,18:19,20.)  
    13-15 그런 하느님과 그런 아브라함 -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빌고 빌 것이며, 늘리고 늘릴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16-17  하느님과 하느님 이녁 - "하느님이 가지시는 바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대물린이들에게 이녁의 뜻을 아니 바꾸겠다는 하느님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것입니다. 
    18-20 앞서간 예수와 뒤따른 우리 - "예수가 가진 바람은 대제사장이 되어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하느님을 뵙고, 우리도 들어와 하느님을 뵙는 것입니다." 


  * 고요의 한마디 - "교회 우리는 우리의 임자들이 교회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갖습니다." 

   교회 우리는 바람(소망)에 대해 이런 물음을 던져봅니다.
    - 교회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누구의 어떤 것입니까?
        - 교회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이녁의 하고픔, 남이 이녁에게 해주길 바라는 하고픔인가?
        - 교회 우리가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이녁의 임자들이 가지신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들이 이녁에게 해 내길 바라는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들이 이녁이 가져으면 하는 바람인가? 이 세갈래의 바람은 하나, 곧 이녁의 임자의 바람입니다. 


  교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임자가 아닙니다. 그리니 교회 우리가 가지는 바람은 우리가 하고픔, 바라고픔을 바람으로 아니 가집니다. 교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임자가 아니기에 우리의 임자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우리의 임자들은 누구입니까? 교회 우리의 임자는 셋이 있습니다. 하나의 임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이십니다. 또 하나의 임자는 맡김(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임자라고 부르는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러니 교회 우리는 우리의 세 임자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우리의 바람으로 삼는 것입니다. 교회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은 하느님이 가지시는 바람이며,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이며, 예수가 가지신 바람입니다. 
  첫째, 하느님이 가지시는 바람은 하느님 스스로에게 가다듬은(맹세한)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대물린이들에게 이녁의 뜻을 아니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빌고 빌 것이며, 늘리고 늘릴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셋째, 예수가 가진 바람은 우리의 빗겨난짓을 깨끗하게 하려고 이녁이란 제물을 가진 고때까지 대제사장이 되어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라는 제물을 가지고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뵈올 것입니다.   
  교회 우리는 교회 우리의 임자가 교회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갖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타내시고, 하느님의 일이 이루심으로, 참이 되십니다.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시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일은 참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우리는 하느님께 맡깁니다. 그럼으로써 교회 우리는 참을 보고, 교회 우리 또한 그런 참을 닮은 참이 될 것입니다. 교회 우리는 그때까지 이런 세 갈래 바람을 가집니다.

  바람(소망)에 대한 물음을 이녁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이녁(나,내)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누구의 어떤 것입니까?
    - 이녁의 바람은 은 이녁의 이녁의 하고픔, 이녁의 임자가 이녁에게 해주길 바라는 하고픔인가?
    -이녁의 바람은 이녁의 임자가 가지신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가 이녁에게 해 내길 바라는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가 이녁이 가져으면 하는 바람인가? 이 세 갈래는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녁의 바람이 이녁의 임자의 바람이 다르다면 이녁과 이녁의 임자가 어울려 만들 모둠살이, 그것이 집이면, 집, 그것이 교회면 교회, 그것이 일터면 일터, 그것이 학교면 학교, 그것이 나라면 나라가 두 쪽이 납니다. 바람이 두 쪽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가부장제라는 틀을 가진 모둠살이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래사람의 바람은 윗사람, 임자의 바람을 이녁의 바람으로 삼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그 모둠살이를 하느님의 나라고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2. 히브리서 6장 13-20절 (8월) 새김 그리고 개역개정판(1998) - "교회 우리는 우리의 임자들이 교회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갖습니다." 


  1) 13-15 그 하느님과 그 아브라함, 그런 하느님과 그런 아브라함. -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빌고 빌 것이며, 늘리고 늘릴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은 그 하느님과 그 아브라함, 그런 하느님과 그런 아브라함이 손발이 척척 맞은 사이에서 이루어진 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하느님이 아브라힘에게,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가지는 바람입니다. 이것으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짐하시고(약속하시고), 이녁에게 가다듬으시고(맹세하시고), 아브라함은 기다리며 버티어서 얻었습니다. - 나는 너를 빌고 빌리라(빌 것이다). 나는 너를 늘리고 늘릴리라(늘릴 것이다). - 아브라함은 다짐하시고(약속하시고) 가다듬으시는(맹세하시는) 하느님을 생각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때까지 맡기고는 버티며, 기다리고 기다릴리라(기달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13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다짐하다,에팡겔로마이1861) 때에 가리켜 맹세할(가다듬다,맹세하다,옴뉘오/옴뉘미3660)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헤아우투1438)를 가리켜(소유격.카타2596) 맹세하여(가다듬다,맹세하다,옴뉘오/옴뉘미3660) 
14 이르시되 ㄱ)내가 반드시(멘3375) 너에게 복 주고(빌다,율로게오2127) 복 주며(빌다,율로게오2127) 너를 번성하게(늘다,플레ㅅ뒤노4129) 하고 번성하게(늘다,플레ㅅ뒤노4129) 하리라 하셨더니 (ㄱ 창 22:16)
15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버티다,견디다,배기다,마크로ㅅ뒤메오3114) 약속(다짐,에팡겔리아1860)을 받았느니라(얻다,에피튕 ㅎ카노2013) 


기림노래 :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습니다.(14-15절) - 248. 언약의 주 하나님/


  2) 16-17 하느님과 하느님 이녁 - "하느님이 가지시는 바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대물린이들에게 이녁의 뜻을 아니 바꾸겠다는 하느님 스스로에게 가닫듬는(맹세하는)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다짐하시고(약속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하신 다짐(약속(을 아니 바꾸겠다고 스스로에게 가다듬는(맹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리하시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타내시고, 하느님의 일이 이루심으로, 하느님께서 참이 되십니다.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시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일은 참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참이 되시고, 참이시기에, 교회 우리는 하느님께 맡깁니다. 그럼으로써 교회 우리는 참을 보고, 교회 우리 또한 그런 참을 닮은 참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메이존-메가스3173의 비교급)를 가리켜(소유격.카타2596) 맹세하나니(가다듬다,맹세하다,옴뉘오3660) 맹세(가다듦,맹세,호르코스3727)는 그들이 다투는(안틸로기아485) 모든 일의 최후(페라스4009) 확정(베바이오시스951)(을쪽하여,에이스1519)이니라 
17 하나님은 약속(다짐,에팡겔리아1860)을 기업으로 받는(대물리다,클레로노모스2818) 자들에게 그 뜻(블레1012)이 변하지 아니함(아메타ㅅ데도스276)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에피데이크뉘미) 그 일을 맹세(가다듦,맹세,호르코스3727)로 보증하셨나니(메시튜오3315) 


기림노래 : 하느님의 다짐을 대물린이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아니 바꾸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스스로에게 다짐하십니다.(17절) - 545.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


  3) 18-20 - 앞서간 예수와 뒤따른 우리 - "예수가 가진 바람은 이녁이 대제사장이 되어 먼저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고, 이어서 우리도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 예수는 우리의 빗겨난짓을 깨끗하게 하려고 예수 이녁이란 제물을 가진 고때까지 대제사장이 되어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하느님께 이녁이란 제물을 바치고, 하느님을 뵙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앞선 예수를 뒤따라 휘장 가운데로 들어와 하느님을 뵙는 것이 예수의 우리에 대한 바람입니다. 예수가 가진 바람은 우리의 빗겨난짓을 깨끗하게 하려고 이녁이란 제물을 가진 고때까지 대제사장이 되어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이녁이란 제물을 하느님께 바치고, 하느님을 뵙는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뒤따라서 우리 이녁이란 제물을 들고 휘장 가운데로 들어와서 하느님께 우리 이녁이란 제물을 바치고, 하느님을 뵙게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6:18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프슈도5574)을 하실 수 없는(아뉘다토스102) (안에서,로,엔1722)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아메타ㅅ데도스276) 사실(프라그마4429)로 말미암아(거쳐서,디아1223) 앞에 있는(프로케이마이4295) 소망(엘피스1680)을 얻으려고(크라테오2902) 피난처를 찾은(토끼다,카타ㅎ퓨고2703) 우리에게 큰(이스ㅎ퀴로스2478) 안위(파라클레시스3874)를 받게 하려(가지다.에ㅎ코2192)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2192) 있는 것은 영혼(목숨,프슈ㅎ케5590)의 닻(앙퀴라45) 같아서(호스5613) 튼튼하고(아스ㅎ팔레스804) 견고하여(베바이오스949) 휘장(카타페타스마2662) 안(가운데,에소테로스2082)에(을쪽하여,에이스1519) 들어 가나니(에이스에르ㅎ코마이1525) 
20 그리로(곳,호푸3699) 앞서 가신(프로드로모스4274) 예수께서 멜기세덱(멜ㅎ키세뎈3198)의 반차(차림,탘시스5010)를 따라(카타2596) 영원히(고짬,이이온165)(을쪽하여,에이스1519) 대제사장(아르ㅎ케에류스749)이 되어(기모마이1096) 우리를 위하여(휘페르5228) 들어 가셨느니라(에이스에르ㅎ코마이1526)  (참고 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기림노래 : 예수께서 우리 위해여 대제사장되어 휘장 가운데로 앞서 들어오시니, 우리도 덩달아 들어옵니다.(19-20절) - 148. 영화로운 주 예수의


  * 고요의 한마디 - "교회 우리는 우리의 임자들이 교회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갖습니다." 

  교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임자가 아닙니다. 그리니 교회 우리가 가지는 바람은 우리가 하고픔, 바라고픔을 바람으로 아니 가집니다. 교회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임자가 아니기에 우리의 임자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우리의 임자들은 누구입니까? 교회 우리의 임자는 셋이 있습니다. 하나의 임자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느님이십니다. 또 하나의 임자는 맡김(믿음)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임자라고 부르는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러니 교회 우리는 우리의 세 임자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우리의 바람으로 삼는 것입니다. 교회 우리가 가져야 할 바람은 하느님이 가지시는 바람이며,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이며, 예수가 가지신 바람입니다. 
  첫째, 하느님이 가지시는 바람은 하느님 스스로에게 가다듬은(맹세한)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대물린이들에게 이녁의 뜻을 아니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가진 바람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빌고 빌 것이며, 늘리고 늘릴 것이라는 다짐입니다. 
  셋째, 예수가 가진 바람은 우리의 빗겨난짓을 깨끗하게 하려고 이녁이란 제물을 가진 고때까지 대제사장이 되어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라는 제물을 가지고 휘장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뵈올 것입니다.   
  교회 우리는 교회 우리의 임자가 교회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람을 교회 우리의 바람으로 갖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나타내시고, 하느님의 일이 이루심으로, 참이 되십니다.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시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말씀, 하느님의 일은 참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 우리는 하느님께 맡깁니다. 그럼으로써 교회 우리는 참을 보고, 교회 우리 또한 그런 참을 닮은 참이 될 것입니다. 교회 우리는 그때까지 이런 세 갈래 바람을 가집니다.

  바람(소망)에 대한 물음을 이녁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이녁(나,내)이 끝까지 붙잡고 있는 바람은 누구의 어떤 것입니까?
    - 이녁의 바람은 은 이녁의 이녁의 하고픔, 이녁의 임자가 이녁에게 해주길 바라는 하고픔인가?
    -이녁의 바람은 이녁의 임자가 가지신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가 이녁에게 해 내길 바라는 바람인가? 이녁의 임자가 이녁이 가져으면 하는 바람인가? 이 세 갈래는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이녁의 바람이 이녁의 임자의 바람이 다르다면 이녁과 이녁의 임자가 어울려 만들 모둠살이, 그것이 집이면, 집, 그것이 교회면 교회, 그것이 일터면 일터, 그것이 학교면 학교, 그것이 나라면 나라가 두 쪽이 납니다. 바람이 두 쪽이 나 있기 때문입니다. 수직적 가부장제라는 틀을 가진 모둠살이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래사람의 바람은 윗사람, 임자의 바람을 이녁의 바람으로 삼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그 모둠살이를 하느님의 나라고 만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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