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사무엘상 1장 1-4절, 21절, 2장 19절, 20장 6절, 29절 - "해마다 설과 한가위에 우리집은 하나님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절합니다."
때: 2020년 1월 25일(토). 설날 성북로교회 주일 야외 예배
곳: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로 161번길
1. 우리나라에서 설과 한가위에 어버이 집에 모인 집안의 모임은 하나님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접합니다.
그러다가 이렇게 조금씩 탈바꿈합니다.
첫째, 기리는 대상, 제사의 대상이 탈바뀝니다. 돌아가신 어버이를 기리는 일인 제사는 하나님을 기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집, 가족의 개념이 탈바뀝니다. 가족, 집안의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집, 가족은 확대가족이 아니고, 집안이 아니라. 어버이와 아직 어른이 아니 된(유대인은 13살 아래, 우리나라 성년은 20살, 선거법이 바뀌었으니 18살) 어린 아이들로 된 부부중심의 집, 핵가족의 집이 단위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리는 일인 제사, 예배의 단위는 그간 확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이어야 합니다.
셋째, 모둠살이(공동체)의 개념이 탈바뀝니다. 핵가족의 울타리는 확대가족이 아니라 교회라는 모둠살이입니다. 핵가족은 그것의 울타리로서 모둠살이었던 확대가족을 가름하는 새로운 모둠살이로서 교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핵가족은 혈연, 학연, 지연적 모둠살이보다 더 끈끈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핵가족은 이제 확대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혈연적 확대가족 보다 더 찐한, 학연보다 더 찐한, 지연보다 더 찐한 관계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간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 살면서 학연, 지연, 그보다 더 강한 삼족(본가, 외가, 처가) 혈연적 가족 공동체는 의무가 되어, 강제된 갑을관계가 되어, 때마다 챙겨야 하니 어버이날, 어버이의 생신날. 제사날, 크고작은 집안 애사, 경사, 우환 등에 사사건건 안부를 묻고, 찾아뵙고, 이바지를 드리고, 잔치를 벌이고, 생색내는 돈을 펑펑 쓰고, 이리하여 준조세가 되어버린 돈이며, 시간이며, 힘이며를 우선하여 써야하고, 그러다보니 다른 일이나, 다른 사회적 관계에 뒤로 밀리게 합니다. 이러니 울타리로서 좋다고 하는 삼족의 혈연적 모둠살이는 한편으로 핵가족의 집을 등치는 갑을관계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빨아먹은 거머리, 진드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더욱이 삼족의 혈연적 모둠살이는 어른 된 아이(혼인하여 집을 이룬 아이)의 집의 비밀성(독자성, 프라이버시)을 깨는 올무, 덫, 멍에, 짐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삼족의 혈연적 모둠살이의 틀을 깨라고 합니다. 이래서 성경 - 창세기, 레위기, 신명기, 이사야, 시편, 예수의 말씀, 바울의 쪽지 등에서 어떤 사회적 관계보다 핵가족을 그리고 그의 비밀성를 갖도록 합니다. 삼족의 혈연 모둠살이, 지연적 모둠살이, 학연적 모둠살이, 이런저런 동아리, 모임들을 가름하여 하나님의 나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 모둠살이를 세우라고 합니다.]
이렇게 탈바꿈할 이야기를 뒤받칠 바탕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다섯 곳이 적혀있는 성경으로 갑니다.
매년제(每年祭, yearly feast, yearly sacrifice, annual sacrifice)가 있습니다.
이는 해마다 집안(엘가나의 집, 다윗의 집)이 지역 성소(실로, 베들레헴)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 사무엘 상 1장 1-4절
1:1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 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여로함의 아들이요 엘리후의 손자요 도후의 증손이요 숩의 현손이더라
2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한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더라
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4 엘가나가 제사를 드리는 날에는 제물의 분깃을 그의 아내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에게 주고
2) 사무엘 상 1장 21절
1:21 그 사람 엘가나와 그의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3) 사무엘 상 2장 19절
2:19그의 어머니가 매년 드리는 제사를 드리러 그의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4) 사무엘 상 20장 6절
20:6 네 아버지께서 만일 나에 대하여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읍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락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5) 사무엘 상 20장 29절
20:29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6) 마무리 - * 고요의 한마디 - "어버이를 기리려고 모이는 설날과 한가위에 하나님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절합니다."
설날과 한가위에 어버이를 기리려고 모이는 확대가족으로서 집안의 모임을 멈추어야 합니다.
허나 확대가족으로서 집안의 모임은 이제까지 풍속이라 모인다면, 이 집안의 모임은 어버이를 기리는 것을 가름하여 하나님을 기립니다. 그리하여 설날과 한가위에 확대가족으로서 집안의 모임은 집안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하다가 때가 되어 설날, 한가위에 어버이를 기리려고 모이는 확대가족으로서 집안 모임이 없어지길 기다립니다.
이렇게 탈바꿈을 바라봅니다.
첫째, 기리는 대상, 제사의 대상이 탈바뀝니다. 돌아가신 어버이를 기리는 일인 제사는 하나님을 기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집, 가족의 개념이 탈바뀝니다. 가족, 집안의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집, 가족은 확대가족이 아니고, 집안이 아니라. 어버이와 아직 어른이 아니 된(유대인은 13살 아래, 우리나라 성년은 20살, 선거법이 바뀌었으니 18살) 어린 아이들로 된 부부중심의 집, 핵가족의 집이 단위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기리는 일인 제사, 예배의 단위는 그간 확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이어야 합니다.
셋째, 모둠살이(공동체)의 개념이 탈바뀝니다. 핵가족의 울타리는 확대가족이 아니라 교회라는 모둠살이입니다. 핵가족은 그것의 울타리로서 모둠살이었던 확대가족을 가름하는 새로운 모둠살이로서 교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핵가족은 혈연, 학연, 지연적 모둠살이보다 더 끈끈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핵가족은 이제 확대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혈연적 확대가족 보다 더 찐한, 학연보다 더 찐한, 지연보다 더 찐한 관계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간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 속에 살면서 학연, 지연, 그보다 더 강한 삼족(본가, 외가, 처가) 혈연적 가족 공동체는 의무가 되어, 강제된 갑을관계가 되어, 때마다 챙겨야 하니 어버이날, 어버이의 생신날. 제사날, 크고작은 집안 애사, 경사, 우환 등에 사사건건 안부를 묻고, 찾아뵙고, 이바지를 드리고, 잔치를 벌이고, 생색내는 돈을 펑펑 쓰고, 이리하여 준조세가 되어버린 돈이며, 시간이며, 힘이며를 우선하여 써야하고, 그러다보니 다른 일이나, 다른 사회적 관계에 뒤로 밀리게 합니다. 이러니 울타리로서 좋다고 하는 삼족의 혈연적 모둠살이는 한편으로 핵가족의 집을 등치는 갑을관계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신체적으로 빨아먹은 거머리, 진드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더욱이 삼족의 혈연적 모둠살이는 어른 된 아이(혼인하여 집을 이룬 아이)의 집의 비밀성(독자성, 프라이버시)을 깨는 올무, 덫, 멍에, 짐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삼족의 혈연적 모둠살이의 틀을 깨라고 합니다. 이래서 성경 - 창세기, 레위기, 신명기, 이사야, 시편, 예수의 말씀, 바울의 쪽지 등에서 어떤 사회적 관계보다 핵가족을 그리고 그의 비밀성를 갖도록 합니다. 삼족의 혈연 모둠살이, 지연적 모둠살이, 학연적 모둠살이, 이런저런 동아리, 모임들을 가름하여 하나님의 나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 모둠살이를 세우라고 합니다.]
집안 화목의 이름으로 확대가족이 설날, 한가위에 모여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을 미풍양속으로 여기면서 이런 모임을 계속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성경에서 말하는 가족의 개념, 곧 핵가족에 따라(어버이와 혼인한 아이와는 갑을관계가 아니라 이제 서로가 독립된 관계가 됨에 따라) 이런 집안의 모임이 사라져야 할 것인지 따져볼 일입니다.
어버이는 어른 된 아이를 어른으로 여겨 내보내며, 혼인하면 출가외인 시킵니다. 아이는 어른이 되었으니 어버이로부터 벗어나서 스스로 집을 벗어나서, 혼인하거나 하여 출가외인 하십시오.
하늘에 띄워 나는 연의 줄을 당기는 것을 멈추고 연의 줄을 끊어 저 멀리 날도록 하듯 어버이는 어른 된 아이를 홀로 서도록 떠나보내십시오. 항구에서 벗어나 뒤돌아 아니 보며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배처럼 아이는 어버이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십니다.
성경에서 집의 개념은 확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입니다. 이 핵가족은 학연, 지연, 혈연이라는 모둠살이에서 벗어나고, 어떤 동아리 모임보다 더 끈끈한 새로운 모둠살이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나타내는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만들어 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은 설과 한가위를 미풍양속으로 세고 있습니다. 집안의 모임으로 설과 한가위에 어버이 집에 모이는 풍속이 계속 되는 동안 이것을 가름하여 설과 한가위에 집안이 단위가 되어 어버이를 기리는 일을 가름하여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어떻습니까? 이리 하다보면 집의 개념이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겠습니까? 그러면서 저절로 설과 한가위에 집안의 화목, 어버이께 효도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없어지겠습니까? 그리하여 마침내 핵가족으로서 집이 이녁의 비밀언덕, 정체성의 등바지인 모둠살이로서 확대가족이라는 어버이의 집에서 벗어나 새로운 이녁의 비밀언덕, 정체성의 등바지로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이루어내겠습니까?
이 교회라는 모둠살이는 혈연적 모둠살이보다 더 끈끈한 모둠살이가 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학연, 지연, 피붙이라는 혈연적 모둠살이보다 더 끈끈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한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보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로서 모둠살이가 부부 중심의 핵가족에서 그리고 핵가족들이 어울려 이룬 교회에서 이루어져 있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것이 되어 있을 때 그것을 갈무리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실 것만 같습니다. 그것이 아니 되어있으면 그것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지 모르겠습니다.
바라기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로서 모둠살이가 핵가족의 집에서, 그리고 이런 집들이 모여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이루어 온 땅에 가득 차게 되어 그리스도 예수께서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 드리려고 다시 오시는 것을 보았으면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멋지고 훌륭한 그림입니다. 이때까지 이녁과 우리는 집과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하나님의 나라로서 이루면서 살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하나님의 말씀을 이제 성북로교회로 가져옵니다.
7) 성북로교회인 우리와 성북로교회의 교인인 이녁은 스스로 이렇게 묻습니다.
이녁은 설날과 한가위에 집안의 모임이 어버이를 기리는 것을 가름하여 하나님을 기리는 것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녁은 가족의 개념은 확대가족이 아니라 핵가족이라고 생각합니까?
이녁은 그렇다면 핵가족은 출가외인되었으니 확대가족의 의무라는 올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이녁은 그래서 설날과 한가위에 집안의 화목, 부모에 효도 이름으로 모이며 먹고 마시며 노는 확대가족의 모임은 없어져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이녁은 그뿐 아니라 핵가족을 중심이 되어 그간 미풍양속이란 이름에서 묶여왔던 학연, 지연, 피붙이 혈연 모둠살이, 가족 공동체에서 벗어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 묶는 교회라는 모둠살이를 이루어야한다고 여깁니까?
2. 기림찬송 - 228장. 556장. 327장.-
해마다, 철마다, 날마다, 때마다. : 228.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
우리 집은 하나님의 집에 갑니다. : 556.날마다 주님을 의지하는/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는 제사를 드립니다. : 327. 주님 주실 화평/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