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누가복음

누가복음 18장 9-17절 (62월) -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고 하나님과 사람께 낮춥니다."

예수스 2019. 10. 25. 22:49

42 누가복음 18장 9-17절 (62월) -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고 하나님과 사람께 낮춥니다." 
  - 이 길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때: 2019년 10월 25일(금). 성령강림절 뒤 열아홉째 주 성북로교회 금요기도회
  곳: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로 161번길


1. 누가복음 18장 9-17절(62월) 얼게 - 하나님께서 세워두신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 "이녁이 올바르다고 하는 바리새인과 달리, 세리는 벗어난 이(죄인)이라고 여기니 올바르다고 여겨지고, 제자라고 으스대는 제자들과 달리, 어른들에게 낮추는 어린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집니다."


62월 18:9-17
  1금 NA18:9-14 (9:10. 11:12. 13. 14.)
  2금 NA18:15-17 (15. 16. 17.)

  1금 NA18:9-14 (9:10. 11:12. 13. 14.) -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비유 -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 성전에 빌려고 올라간 바리새인은 앞 사람의 보기이고, 세리는 뒷사람 보기입니다.
  - 바리새인은 이녁이 올바르다고 으스대며 남을 깔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빌 때로 따로 서서 이렇게 빕니다. 하나님! 이녁이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닌 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고맙습니다. 게걸스럽거나. 나쁘거나, 색골스럽거나, 더욱 세리와 아니 같은 것을 고맙습니다. 이녁은 이레 두 번 굶습니다. 이녁은 번 것의 십의 일을 드립니다. 이처럼 바리새인은 이녁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잘했다고 으스대며 높입니다. 헌데 바리새인은 이처럼 이녁 추겨세우는 것에 큰소리치며 빌기를 마치고 났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쪽으로 눈을 들려고 아니 생각하고, 오로지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벗어난놈(죄인)에게 가여워해지시도록 하십시오. 헌데 이 세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올바르다고 여겨져서 집으로 내려갑니다.
  - 이처럼 이녁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이녁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2금 NA18:15-17 (15. 16. 17.) - 제자들과 어린이들 이야기 -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 하나님의 나라를 아니 가지면 어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겠습니까?
  -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지게 되시도록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이라며 사람들에게 으스대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이녁의 자리를 빌러 텃세 곧, 갑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호랑이의 자리를 훔쳐 허세를 부리는 여우짓을 합니다(호가호위, 狐假虎威). 이런 제자들의 꼴을 보신 예수께서 제자들에 의해 밀쳐진 어린이들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너희는 이녁의 제자들이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그릇이 아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내버려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아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어린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아니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니 들어간다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면 제자들처럼 예수의 제자라며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어른에게 낮추는 것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께 낮춤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 고요의 한 마디 -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고 하나님과 사람께 낮춥니다."
  - 사람은 남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사람은 남으로부터 높여지길 바랍니다. 사람은 나에게 이녁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녁은 이모저모로 스스로를 자랑하게 됩니다. 이녁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녁을 드러내려고 안달하게 됩니다. 헌데 이럼으로써 이녁이 남으로 하여금 시셈을 내게 만들고, 남에게 비교되는 괴로움을 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몹쓸 짓입니다. 사람이 갖게 되는 이런 하고픔(욕심)으로 말미암아 이녁이 잘한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들추어 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것들이 없는 이들을 낮추게 여겨지고, 깔보게 되어 집니다. 이런 것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녁을 높이고 남을 낮추게 함으로서, 이녁이 할 수만 있으면 이녁이 가진 그 무엇으로 남보다 위에 서게 되면, 갑질할 수가 있고, 남을 이녁의 시킴 아래 두고 부려먹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녁이 남보타 높아지는 것을 키우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하여 남으로부터 이녁됨(이녁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사이의 불평등을 키우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수직적 가부장제의 틀, 곧 하나님의 나라고 올라가게 하는 사닥다리를 몹쓸 것으로 만드는 짓이 됩니다. 
  이런 사람됨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일깨우시려고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제자들과 어린이들의 두 토막 이야기들을 들먹이십니다. 이 두 토막의 이야기는 이렇게 묶어집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어린이들은 절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 그렇다면 누군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면 이녁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높아져야 합니다. 이녁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높아지려면 이녁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낮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녁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이녁을 낮추는 이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이녁 잘한 것, 잘난 것이 있다는 것으로 남을 깔보며, 하나님께 잘났다고 추겨 세우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이와 달리 세리는 하나님께 낮추는 바람에 하나님께로부터 올바르다고 여겨집니다. 바리새인은 이녁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높이니 낮아지고, 세리가 이녁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낮추니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제자임을 내세워 예수께로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는 이들을 꾸중함으로써 갑질을 하고, 호랑이 앞에 여우짓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들 내게 오는 것을 내버려두라고 하시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이녁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높이니 낮아지고, 어린들은 어른에게 낮추니 하나님께서 어린이들을 높이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갖도록 하십니다.
  이처럼 이녁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 낮추면 하나님께서는 이녁을 높이시어,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올리십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2. 누가복음 18장 9-17절(62월) 새김 그리고 개역개정판(1998) -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고 하나님과 사람께 낮춥니다."
  - 이 길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1금 NA18:9-14 (9:10. 11:12. 13. 14.) - 바리새인과 세리에 대한 비유 -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 성전에 빌려고 올라간 바리새인은 앞 사람의 보기이고, 세리는 뒷사람 보기입니다.
  - 바리새인은 이녁이 올바르다고 으스대며 남을 깔봅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빌 때로 따로 서서 이렇게 빕니다. 하나님! 이녁이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닌 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고맙습니다. 게걸스럽거나. 나쁘거나, 색골스럽거나, 더욱 세리와 아니 같은 것을 고맙습니다. 이녁은 이레 두 번 굶습니다. 이녁은 번 것의 십의 일을 드립니다. 이처럼 바리새인은 이녁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잘했다고 으스대며 높입니다. 헌데 바리새인은 이처럼 이녁 추겨세우는 것에 큰소리치며 빌기를 마치고 났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어떤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 세리는 멀리 서서 하늘을 쪽으로 눈을 들려고 아니 생각하고, 오로지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 벗어난놈(죄인)에게 가여워해지시도록 하십시오. 헌데 이 세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올바르다고 여겨져서 집으로 내려갑니다.
  - 이처럼 이녁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이녁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프로스유ㅎ코마이) 성전에 올라가니(아나바이노)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텔로네스)라
11 바리새인은 서서(수동.히스테미) 따로 기도하여(프로스유ㅎ코마이)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복수.게걸스러운이들,하르팤스), 불의(복수.나쁜이들,아디코스), 간음을 하는 자들(복수.색골들,모이ㅎ코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단수.텔로네스)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유ㅎ카리스테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네스튜오) 또 소득(크타오마이)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아포데카토오) 하고
13 세리는 멀리(마크로ㅅ덴) 서서(히스테미) 감히 눈을 들어(엪아이로)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팊토)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수동.명령.힐라스코마이)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마르톨로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수동.올바르다,디카이오오)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카타바이노) 무릇 자기(헤아우투)를 높이는(휲소오) 자는 낮아지고(수동.타페이노오) 자기(헤아우투)를 낮추는(타페이노오) 자는 높아지리라(수동.휲소오) 하시니라


  2금 NA18:15-17 (15. 16. 17.) - 제자들과 어린이들 이야기 -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 하나님의 나라를 아니 가지면 어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겠습니까?
  -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지게 되시도록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왔는데 제자들이 꾸짖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이라며 사람들에게 으스대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이녁의 자리를 빌러 텃세 곧, 갑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호랑이의 자리를 훔쳐 허세를 부리는 여우짓을 합니다(호가호위, 狐假虎威). 이런 제자들의 꼴을 보신 예수께서 제자들에 의해 밀쳐진 어린이들을 가까이 부르십니다. 너희는 이녁의 제자들이지만 아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그릇이 아니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내버려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아이들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어린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아니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는 아니 들어간다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십니다.
  - 그렇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면 제자들처럼 예수의 제자라며 사람들 앞에서 으스대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어른에게 낮추는 것입니다. 사람과 하나님께 낮춤으로써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니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가정법.함토마이)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브레ㅎ포스)를 데리고 오매(프로스ㅎ페로)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에피티마오)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프로스칼레오)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파이니온)이 내게 오는(에르ㅎ코마이) 것을 용납하고(명령.아ㅎ피에미) 금하지(명령.콜뤼오)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가정법.가지다,데ㅎ코마이).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가정법.들어가다,에이스에르ㅎ코마이) 못하리라 하시니라


  * 고요의 한 마디 -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고 하나님과 사람께 낮춥니다."
  - 사람은 남이 알아주길 바랍니다. 사람은 남으로부터 높여지길 바랍니다. 사람은 나에게 이녁을 드러내고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녁은 이모저모로 스스로를 자랑하게 됩니다. 이녁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녁을 드러내려고 안달하게 됩니다. 헌데 이럼으로써 이녁이 남으로 하여금 시셈을 내게 만들고, 남에게 비교되는 괴로움을 심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몹쓸 짓입니다. 사람이 갖게 되는 이런 하고픔(욕심)으로 말미암아 이녁이 잘한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을 들추어 내게 되고, 그러다 보면, 그것들이 없는 이들을 낮추게 여겨지고, 깔보게 되어 집니다. 이런 것은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녁을 높이고 남을 낮추게 함으로서, 이녁이 할 수만 있으면 이녁이 가진 그 무엇으로 남보다 위에 서게 되면, 갑질할 수가 있고, 남을 이녁의 시킴 아래 두고 부려먹을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녁이 남보타 높아지는 것을 키우려고 애를 씁니다. 이렇게 하여 남으로부터 이녁됨(이녁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사이의 불평등을 키우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수직적 가부장제의 틀, 곧 하나님의 나라고 올라가게 하는 사닥다리를 몹쓸 것으로 만드는 짓이 됩니다. 
  이런 사람됨에서 벗어나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일깨우시려고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제자들과 어린이들의 두 토막 이야기들을 들먹이십니다. 이 두 토막의 이야기는 이렇게 묶어집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들의 것입니다. 그러니 어린이들은 절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 그렇다면 누군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어린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려면 이녁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높아져야 합니다. 이녁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높아지려면 이녁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낮추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녁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이녁을 낮추는 이는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이녁 잘한 것, 잘난 것이 있다는 것으로 남을 깔보며, 하나님께 잘났다고 추겨 세우지만, 하나님께로부터 아무런 말씀이 없습니다. 이와 달리 세리는 하나님께 낮추는 바람에 하나님께로부터 올바르다고 여겨집니다. 바리새인은 이녁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높이니 낮아지고, 세리가 이녁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낮추니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제자임을 내세워 예수께로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는 이들을 꾸중함으로써 갑질을 하고, 호랑이 앞에 여우짓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들 내게 오는 것을 내버려두라고 하시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들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로써 제자들은 이녁을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높이니 낮아지고, 어린들은 어른에게 낮추니 하나님께서 어린이들을 높이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갖도록 하십니다.
  이처럼 이녁이 사람과 하나님 앞에 낮추면 하나님께서는 이녁을 높이시어,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에까지 올리십니다. 이 길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3. 기림노래 - 467장. 238장. 226장 -
  이녁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이녁을 낮추는 이는 높아집니다.: 467. 높으신 주께서 낮아지심은/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 238. 해 지는 저편/
  어른에게 낮추는 어린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있습니다.: 226. 성령으로 세례받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