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누가복음

누가복음 14장 7-15절 (53월) -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복스러운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이루어가십시오."

예수스 2019. 9. 6. 10:35

42 누가복음 14장 7-15절 (53월) -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복스러운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이루어가십시오."


  때: 2019년 9월 6일(금). 성령강림절 뒤 열둘째 주 성북로교회 금요기도회
  곳: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로 161번길


1. 누가복음 14장 7-15절 (53월) 얼게 -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앉을 자리와 불러모은 이들, 먹을 이는 복스러운 이는 이러합니다."  -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복스러운 이는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갑니다.

   첫째, 잔치에 불러졌을 때 앉을 자리는 높은 자리가 아니고, 오히려 끝자리입니다..(7-11)
   둘째, 잔치를 벌릴 때 불러모을 이들은 이녁에게 되갚아줄 벗들(학연, 동아리, 계), 맏아우들, 피붙이들(혈연). 넉넉한 이웃들(지연)이 아니고, 이녁에게 되갚아줄 수 없는 사회적약자들, 곧 가난뱅이들을, 몸다친이들을, 절름발이들을, 소경들입니다.(12-14)
   셋째, 복스러운 이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함께 떡먹는 이입니다.(15)


  1금 NA14:7-11 (7:8,9. 10. 11.)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서 앉을 자리 - 잔치에 불러졌을 때 높은 자리에 아니 기대시고, 오히려 끝자리에 기대십시오."
  2금 NA14:12-14 (12. 13:14.)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불어모을 이들 - "그대가 잔치를 벌릴 때, 이녁에게 되갚아줄 학연, 혈연, 지연의 사람은 놔두고, 이녁에게 되갚아줄 수 없는 이들을 불러모으십시오.
  3금 NA14:15-(15.) 하나님의 나라에서 복스러운 이 -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함께 떡먹을 이입니다.


  * 고요의 한마디 -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복스러운 이는 하나님의 잔치에서 끝자리에 앉는 이, 사회적 약자들을 불러모아 잔치하는 이,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먹는 이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갑니다.

  혼인잔치에서 누구와 더불어 먹을까? 이 잔치가 부름받은 잔치라면 어느 자리에 앉을까?, 이 잔치에 사람을 부른다면 누구를 부를까?
  잔치는 이녁이 남으로부터 불려지는 잔치가 있고, 이녁이 남을 불러모으는 잔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하나님께서 이녁을 불러주시는 잔치이고, 이녁이 하나님을 불러모시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이녁이 하나님과의 사이(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누리(세속)에서 이녁은 학연, 혈연, 지연, 동아리, 계 등 사람사이(관계)에서 애를 태웁니다. 누리(세속)에서 잔치는 누리(세속)에서 하고 있는 지위. 신분, 권력, 돈, 나이를 쌓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연줄을 쌓으면서, 사다리를 올라타면서, 거기에서 이녁의 됨됨이(정체성)을 찾고, 키워가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리(세속)에서 잔치는 출세했다는 것, 잘살고 있다는 것, 이녁의 개성을 살린다는 것, 이녁의 정체성을 높이는 것 운운 하면서, 이런 저런 잔치적 사이(관계) 곧 누리(세속)적 모임을 만듭니다. 이 모임은 희희낙락하기 위해, 위로를 주고받고,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애경사, 이런 저런 핑계로 이어갑니다. 여기에 몸, 마음, 힘 뜻, 시간, 돈, 에너지를 얼마나 쏟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누리의 모임, 잔치에 쏟아부은 여기에 몸, 마음, 힘 뜻, 시간, 돈, 에너지를 이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잔치에 쏟으리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그동안 누리(세속)에서 애를 쓰면 만들어왔던 사람들과의 사이 - 학연, 혈연, 지연, 동아리, 계 모임 등으로 나타나는 사이잇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사회적 강자인 이녁이 사회적 약자를 불러모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임, 잔치는 누리(세속)에서처럼 이녁이 불러지든, 이녁이 불러모으든 잔치를 거쳐서 이녁 스스로 이녁을 세우려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사이(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 모임, 잔치에서 이녁이 버려지고, 내려놓여지고, 지워지고, 부인되어, 텅 비어지니 하나님으로 꽉 채워지고, 하나님에로 하나 되니 이녁에게 드디어 잔치다운 잔치가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가 이녁이 불러지는 잔치일 때는 하나님이 이녁을 불러주신 잔치이므로 이미 이녁의 자리매김은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하나님과 이녁 사이를 잇는 혼인잔치입니다. 이 때 이녁은 하나님의 아내가 되니까, 온전히 이녁은 없어지고 바께(남편) 되신 하나님의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과 하나된 것입니다. 이녁은 이제 이녁이 아니라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녁으로 하여금 이녁의 모든 것을 이제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께 믿고 내 맡기는 아내 되어 마침내 하나님께로 하나 되길 바라십니다. 서로 다른 둘이 합쳐서 새로운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이녁이 아내로서 이녁은 간곳없고 오롯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 하나님에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가 이녁이 베풀 때는 이녁이 불러모을 손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교회 모둠살이 안이든 밖이든, 사회적 약자, 사회적 따돌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녁은 그들을 하나님 모시듯 할 뿐 그들로부터 되갚음 받을 잔치를 아니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사람은 누리(세속)에서처럼 사람들과의 사이(관계), 사람들 속에서 이녁의 됨됨이(정체성)을 알리고 키우는 짓을 멈추고, 사람 앞에서 해왔던 이녁을 드러내는 생색내는 짓은 그만두고. 이제 하나님 하나님의 앞이니까 오로지 하나님과의 사이(관계), 하나님에 의해 알아주는 됨됨이(정체성)에 과녁(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리(세속)에서처럼 “이녁은 그 무엇이다”, “이녁은 그 누구이다”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은 없고, 하나님만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리(세속)에서 남들에게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 이녁은 없고, 하나님만 드러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이녁이 하나님과의 사이(관계)를 맺는 것이며, 누리(세속)에서 그렇게 힘껏 스스로 이녁을 세우려는 생각을 버리고. 이녁을 내려놓고, 이녁을 지우고, 이녁을 죽이는(자기 부인) 십자가를 지는 것 등으로 텅 빈 이녁을 하나님에 의해 이녁이 세워지고,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일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이녁이 하나님으로 꽉 채워지는 것이어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잔치여서, 이녁에게 드디어 잔치다운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교인은 누리(세속)의 많은 사람들과의 사이( 관계)를 맺어 살아야 하니까, 상부상조라는 이름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희희락하는 누리(세속)에서 잔치적 사이(관계)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와 교인은 이녁의 그 무엇을 위해서, 이녁이 사람들을 부르고, 이녁이 사람들에 의해 부름을 받은 누리(세속)적 잔치를 누리고 싶습니까?
  이럴 때
  먼저
  누가 이녁을 불러주는 잔치에 가고 싶습니까? 학연이란 연줄에 얽힌 벗입니까? 선후배입니까? 동호인입니까? 동아리입니까? 계모임입니까?혈연이란 피붙이로서 맏아우(형제자매), 친척 등 삼족(친가. 외가, 처가/시가)입니까? 지연이란 부한 이웃입니까? 모둠살이에서 권력을 잡고, 돈을 거머쥐고 있는 이녁의 갑인 지배계급입니까?
  다음으로
  이녁은 누구를 불러모으는 잔치를 베풀고 싶습니까? 학연이란 연줄에 얽힌 벗입니까? 선후배입니까? 동호인입니까? 동아리입니까? 계모임입니까? 혈연이란 연줄에 얽힌 피붙이 맏아우, 친척 등 삼족(친가. 외가, 처가/시가)입니까? 지연의 부한 이웃입니까? 모둠살이에서 권력을 잡고, 돈을 거머쥐고 있는 이녁의 갑인 지배계급입니까?
  이제 이 누리(세속)에 살면서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를 누려보지 않겠습니까? 누리에서 모임과 잔치에 쏟아부은 몸, 마음, 힘 뜻, 시간, 돈, 에너지를 이제 하나님의 모임, 잔치를 마련하는데 쏟아부어 보지 않겠습니까? 이녁과 하나님과의 사이(관계)만이 참이므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불러지고 하나님을 불러모시는 잔치를 누려보지 않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대는 집에서 단짝과 그대의 교회에서 그대는 사회적 강자라면 사회적 약자를 불러모아 그리스도의 맏아우들로 삼아, 함께 먹는, 서로 복스러운 이들이 되는 하나님의 잔치를 누리고 있습니까?


2 누가복음 14장 7-15절 (53월) -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복스러운 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렇게 이루어가십시오."


  1금 NA14:7-11 (7:8,9. 10. 11.)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서 앉을 자리 - 잔치에 불러졌을 때 높은 자리에 아니 기대시고, 오히려 끝자리에 기대십시오."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녁이 높임을 받을 때 이녁을 낮추는 것이 슬기입니다.

14:8ㄱ "잔치에 불러졌을 때 높은 자리에 아니 기대십시오."
14:10ㄱ "잔치에 불러졌을 때 끝자리에 기대십시오."
14:11- "사람마다 이녁을(스스로) 높이는 이는 낮추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녁을(스스로) 낮추는 이는 높여질 것입니다."
  - 그렇다면 부름받은 잔치에서 끝자리를 잡으십시오. 잔치에 가거들랑 가장 낮은 자리에 앉으십시오.
  -> 여러 사람 사이에서, 사람의 모임에서, 이미 이녁이 높이 있으면 낮아질 일밖에 없습니다. 이와 달리 이녁이 가장 낮아 있으면 높아질 일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녁을 높이는 길은 이녁이 먼저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녁은 언제가 높아질 것입니다.
  잔치에 불러졌을 때 이녁을 드려내려고 성큼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도 참고, 임자(주인)가 자리를 매겨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슬기입니다, 누리(세속)에서 이녁의 자리는 이녁이 그 간 쌓아둔 자리(지위, 신분), 가진 것, 나이에 의해 잡혀져있습니다.   누리(세속)에서 잔치 임자가 쓰는 손님의 자리매김의 잣대는 손님이 누리(세속)에서 쌓아둔 지위, 신분, 권력, 돈, 나이 등의 열매(업적)에 바탕하여 누리(세속)상에서 내려진 값어치에 걸맞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녁은 이것에 걸맞게 맞아주길 바랍니다. 임자는 이에 걸맞게 이녁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다음에 더 잘 맞이주길 바라면서 이녁은 힘써서 누리(세속)에서 이녁의 자리, 곧, 지위, 신분, 권력, 부, 나이를 많이 챙겨갑니다. 다만 잔치에 불러진 사람들과 상대적 자리매김을 알 수가 없으니 임자가 이미 매겨놓은 것에 따라 또는 매길 때가지 기다리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리(세속)에서 슬기입니다.
  이 비유는 누리(세속)에서 잔치에 대한 슬기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빗대고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리매김은 하나님의 나라 임자이신 하나님이 하시므로 자리매김의 잣대는 누리(세속)에서 잔치의 임자의 쓰는 잣대와 다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잣대, 하나님께서 이녁의 자리매김은 누리(세속)에서 하는 연장처럼 그 동안 이녁이 스스로 하나님의 위한다며 하나님께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등의 열매(업적) 등이 아니라, 이녁은 하나님의 누구로서,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아낸 이녁의 무엇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종, 아들, 벗이 되어 하나님의 시킴에 그저 그냥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하심에 늘 지켜보는 것입니다. 만일 이녁이 스스로 생각해서 손수 그 무엇을 하려고 것, 이녁이 좋은 자리를 찾지 하려고 몸부림치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께 맡기지 아니한 짓이고, 믿음이 없는 짓이고, 거슬리고 벗어난 짓, 죄짓는 짓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에서 자리매김은 임자이신 하나님의 몫이므로 이녁은 이녁 생각해서 마음대로 자리 잡는 것이 아니고, 온통 잔치 임자이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녁은 누구로부터 불러지는 잔치에 가고 싶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7 청함을 받은(수동. 칼레오) 사람들이 높은 자리(프로토클리시아) 택함을(에클레고) 보시고(엪에ㅎ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레고)
8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가모스)에 청함을 받았을(가정법.수동. 칼레오) 때에 높은 자리(프로토클리시아)에 2)앉지(명령. 카타클리노)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엔티모스)이 청함을 받은(수동. 칼페오) 경우에 (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9 너와 그를 청한(칼레오)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명령. 디도미)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아이스ㅎ퀴네) 끝(에스카토스) 자리로 가게(캍에ㅎ코) 되리라(아르ㅎ코마이)
10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명령. 포류오마이) 끝자리에 2)앉으라(명령. 아나핖토) 그러면 너를 청한(칼레오) 자가 와서(에르ㅎ코마이) 너더러 벗(ㅎ필로스)이여 올라(아노테로스) 2)앉으라(프로스아나바이노)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2)앉은(쉰아나나케니마이) 모든 사람 앞에서(에노피온) 영광(돜사)이 있으리라 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11 무릇 자기를(헤아우투) 높이는(휲소오) 자는 낮아지고(수동. 타페이노오) 자기를 낮추는(타페이노오 자는 높아지리라(수동. 휲소오)


  2금 NA14:12-14 (12. 13:14.)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불러모을 이들 - "그대가 잔치를 벌릴 때, 이녁에게 되갚아줄 학연, 혈연, 지연의 사람은 놔두고, 이녁에게 되갚아줄 수 없는 이들을 불러모으십시오.


  14:12ㄴ"네가 낮참을 또는 저녁을 만들(마련할) 때, 너는 그들이 너를 되부르는 것,그리고 너에게 되갚음이 아니 되도록, 너의 그 벗들을, 너의 맏아우들을,  너의 피붙이들을, 너의 넉넉한 이웃들을 아니 불러모으십시오."(12)
  - 그대가 낮참이든 저녁이든 누군가에게 잔치를 베풀고 싶거든 주고 받기가 되는 잔치를 아니 하십시오. 서로 주고 받는 사이가 되는, 그래서 정을 쌓아가는 학연, 혈연, 지연의 모임을 두텁게 하기 위해, 으례것 먹고 마시는 잔치를 아니 베푸십시오.   ->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나의 정체감을 확인받고 싶은 그런 모임인 학연, 혈연, 지연의 모임에서 벗어나십시오. 내가 내가 하는 것 만큼의 대접을 받고 싶어서, 베풀고 대접하는 그런 학연, 혈연, 지연, 동아리, 친목계 등등의 모임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렇다면 이녁은 어떤 모임을 만들려고 하렵니까?


14:13 "오히려 네가 잔치를 만들(마련할) 때 가난뱅이들을, 몸다친이들을, 절름발이들을, 소경들을 너는 부르십시오."(13)
14:14 "그리고 네가 복스러운 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너에게 되갚기를 아니 가집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그 올바른 이들의 일으킴(부활) 안에서 너에게 되갚아질 것입니다."(14)
 - 그래서 그대가 잔치를 베풀고 싶거들랑 그대에게 되갚기를 할 수 없는 이들, 곧
난뱅이들을, 몸다친이들을, 절름발이들을, 소경들을 불러모아서 하십시오. 이것이 그대를 복짓는 이가 되게 합니다. 그대가 그대의 잔치 불러모운 이들은 그대에게 되갚아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되갚음은 일으킴(부활)의 때에 그대에게 되갚아질 것입니다. 그래서서 그대는 복스러운 것입니다. ->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대는 이제 새로운 모임을 만드라는 것입니다. 그 모임은 먹고마시는 일에 주고받는 사이를 만드는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사이에 먹고마시는 것에 되갚음이 없는 모임을 만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라는 모둠살이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12 또 자기를 청한(칼레오) 자에게 이르시되(레고) 네가 점심(아리스톤)이나 저녁(데잎논)이나 베풀거든(가정법. 포이에오) 벗(ㅎ필로스)이나 형제아델ㅎ포스)나 친척(슁게네스)이나 부한(플루시오스) 이웃(게이톤)을 청하지(명령. ㅎ포네오) 말라 두렵건대(메포테)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가정법. 안티칼레오) 네게 갚음(안타포도마)이 될까(가정법. 기노마이) 하노라
13 잔치(도ㅎ케)를 베풀거든(가정법. 포이에오) 차라리(알라) 가난한 자들(프토ㅎ코스)과 몸 불편한 자들(아나페로스)과 저는 자들(ㅎ콜로스)과 맹인들(튀ㅎ플로스)을 청하라(명령. 칼레오)
14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안트아포디도미)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마카리오스)  되리니 이는 의인들(디카이오스)의 부활시(아나스타시스)에(안에, 엔)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수동. 안트아포디도미) 하시더라


  3금 NA14:15-(15.) 하나님의 나라에서 복스러운 이 - "하나님의 나라에서 복스러운 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함께 먹을 이입니다."


14:15ㄴ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떡을 먹을 이는 복스럽습니다."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함께 먹는 이는 복스럽습니다.
  복있는 이는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먹는이입니까?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곳은 어떤 곳입니까?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이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 곳입니까?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곳이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이곳은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교제공동체), 공짜로 나누어주는(분배공동체), 모둠살이인 사도행전의 교회(초대교회) 입니다.
  -> 그렇습니다. 교회는 사회적 약자에게 공짜로 먹여주는(교제공동채), 공짜로 나누어주는(분배공동채) 모둠살이입니다.
  그렇다면 이녁은 하나님의 나라로서 교회라는 모임, 모둠살이를 만들어보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4:15 함께 2)먹는(쉰아나나케니마이)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을 듣고(아쿠오) 이르되(에포)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안에, 엔) 떡을 먹는(ㅎ파고) 자는 복되도다(마카리오스) 하니 (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 고요의 한마디 - "하나님의 나라에서 먹을 복스러운 이는 하나님의 잔치에서 끝자리에 앉는 이, 사회적 약자들을 불러모아 잔치하는 이,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먹는 이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갑니다.

  혼인잔치에서 누구와 더불어 먹을까? 이 잔치가 부름받은 잔치라면 어느 자리에 앉을까?, 이 잔치에 사람을 부른다면 누구를 부를까?
  잔치는 이녁이 남으로부터 불려지는 잔치가 있고, 이녁이 남을 불러모으는 잔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하나님께서 이녁을 불러주시는 잔치이고, 이녁이 하나님을 불러모시는 잔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이녁이 하나님과의 사이(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누리(세속)에서 이녁은 학연, 혈연, 지연, 동아리, 계 등 사람사이(관계)에서 애를 태웁니다. 누리(세속)에서 잔치는 누리(세속)에서 하고 있는 지위. 신분, 권력, 돈, 나이를 쌓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연줄을 쌓으면서, 사다리를 올라타면서, 거기에서 이녁의 됨됨이(정체성)을 찾고, 키워가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리(세속)에서 잔치는 출세했다는 것, 잘살고 있다는 것, 이녁의 개성을 살린다는 것, 이녁의 정체성을 높이는 것 운운 하면서, 이런 저런 잔치적 사이(관계) 곧 누리(세속)적 모임을 만듭니다. 이 모임은 희희낙락하기 위해, 위로를 주고받고, 공감대를 만들기 위해,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해, 애경사, 이런 저런 핑계로 이어갑니다. 여기에 몸, 마음, 힘 뜻, 시간, 돈, 에너지를 얼마나 쏟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누리의 모임, 잔치에 쏟아부은 여기에 몸, 마음, 힘 뜻, 시간, 돈, 에너지를 이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잔치에 쏟으리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그동안 누리(세속)에서 애를 쓰면 만들어왔던 사람들과의 사이 - 학연, 혈연, 지연, 동아리, 계 모임 등으로 나타나는 사이잇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사회적 강자인 이녁이 사회적 약자를 불러모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모임, 잔치는 누리(세속)에서처럼 이녁이 불러지든, 이녁이 불러모으든 잔치를 거쳐서 이녁 스스로 이녁을 세우려고 이런저런 사람들과 사이(관계)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나라 모임, 잔치에서 이녁이 버려지고, 내려놓여지고, 지워지고, 부인되어, 텅 비어지니 하나님으로 꽉 채워지고, 하나님에로 하나 되니 이녁에게 드디어 잔치다운 잔치가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가 이녁이 불러지는 잔치일 때는 하나님이 이녁을 불러주신 잔치이므로 이미 이녁의 자리매김은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하나님과 이녁 사이를 잇는 혼인잔치입니다. 이 때 이녁은 하나님의 아내가 되니까, 온전히 이녁은 없어지고 바께(남편) 되신 하나님의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것이 되고, 하나님과 하나된 것입니다. 이녁은 이제 이녁이 아니라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녁으로 하여금 이녁의 모든 것을 이제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께 믿고 내 맡기는 아내 되어 마침내 하나님께로 하나 되길 바라십니다. 서로 다른 둘이 합쳐서 새로운 하나 되는 것이 아니라, 이녁이 아내로서 이녁은 간곳없고 오롯이 하나님의 것이 되어, 하나님에로 하나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가 이녁이 베풀 때는 이녁이 불러모을 손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교회 모둠살이 안이든 밖이든, 사회적 약자, 사회적 따돌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녁은 그들을 하나님 모시듯 할 뿐 그들로부터 되갚음 받을 잔치를 아니 바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에 사는 사람은 누리(세속)에서처럼 사람들과의 사이(관계), 사람들 속에서 이녁의 됨됨이(정체성)을 알리고 키우는 짓을 멈추고, 사람 앞에서 해왔던 이녁을 드러내는 생색내는 짓은 그만두고. 이제 하나님 하나님의 앞이니까 오로지 하나님과의 사이(관계), 하나님에 의해 알아주는 됨됨이(정체성)에 과녁(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리(세속)에서처럼 “이녁은 그 무엇이다”, “이녁은 그 누구이다”를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은 없고, 하나님만 계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리(세속)에서 남들에게 그렇게 드러내고 싶은 이녁은 없고, 하나님만 드러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이녁이 하나님과의 사이(관계)를 맺는 것이며, 누리(세속)에서 그렇게 힘껏 스스로 이녁을 세우려는 생각을 버리고. 이녁을 내려놓고, 이녁을 지우고, 이녁을 죽이는(자기 부인) 십자가를 지는 것 등으로 텅 빈 이녁을 하나님에 의해 이녁이 세워지고, 만들어지고, 채워지는 일입니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는 이녁이 하나님으로 꽉 채워지는 것이어서, 하나님과 하나 되는 잔치여서, 이녁에게 드디어 잔치다운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와 교인은 누리(세속)의 많은 사람들과의 사이( 관계)를 맺어 살아야 하니까, 상부상조라는 이름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희희락하는 누리(세속)에서 잔치적 사이(관계)를 계속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와 교인은 이녁의 그 무엇을 위해서, 이녁이 사람들을 부르고, 이녁이 사람들에 의해 부름을 받은 누리(세속)적 잔치를 누리고 싶습니까?
  이럴 때
  먼저
  누가 이녁을 불러주는 잔치에 가고 싶습니까? 학연이란 연줄에 얽힌 벗입니까? 선후배입니까? 동호인입니까? 동아리입니까? 계모임입니까?혈연이란 피붙이로서 맏아우(형제자매), 친척 등 삼족(친가. 외가, 처가/시가)입니까? 지연이란 부한 이웃입니까? 모둠살이에서 권력을 잡고, 돈을 거머쥐고 있는 이녁의 갑인 지배계급입니까?
  다음으로
  이녁은 누구를 불러모으는 잔치를 베풀고 싶습니까? 학연이란 연줄에 얽힌 벗입니까? 선후배입니까? 동호인입니까? 동아리입니까? 계모임입니까? 혈연이란 연줄에 얽힌 피붙이 맏아우, 친척 등 삼족(친가. 외가, 처가/시가)입니까? 지연의 부한 이웃입니까? 모둠살이에서 권력을 잡고, 돈을 거머쥐고 있는 이녁의 갑인 지배계급입니까?
  이제 이 누리(세속)에 살면서도 이것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잔치를 누려보지 않겠습니까? 누리에서 모임과 잔치에 쏟아부은 몸, 마음, 힘 뜻, 시간, 돈, 에너지를 이제 하나님의 모임, 잔치를 마련하는데 쏟아부어 보지 않겠습니까? 이녁과 하나님과의 사이(관계)만이 참이므로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께로부터 불러지고 하나님을 불러모시는 잔치를 누려보지 않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대는 집에서 단짝과 그대의 교회에서 그대는 사회적 강자라면 사회적 약자를 불러모아 그리스도의 맏아우들로 삼아, 함께 먹는, 서로 복스러운 이들이 되는 하나님의 잔치를 누리고 있습니까?


3. 기림노래 - 136장. 247장. 238장.
  하나님과의 혼인잔치에 불러졌습니다. : 136. 가나의 혼인 잔치/
  사회적 약자들을 불러모아 잔치를 벌립니다. : 247. 보아라 저 하늘에/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먹는 이는 복스러운 이입니다.: 238. 해 지는 저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