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요한복음

요한복음 9장 1-10장 42절 (10월 1-16금) 얼게 그리고 개역개정판(1998) - "예수는 이녁이 누구인가를 밝히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꼴을 일캐우다."

예수스 2019. 5. 18. 01:05

43 요한복음 9장 1-10장 42절 (10월 1-16금) 얼게 그리고 개역개정판(1998) - "예수는 이녁이 누구인가를 밝히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꼴을 일캐우다."
  -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나의 안에, 나와 아버지은 하나인 것처럼, 나와 이곳 우리에 있는 나의 양들 사이. 나와 이곳 우리에 아니 있는 양들 사이가 그러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때: 2019년 5월 17일(금). 부활절 넷째 주일 흰빛  어버이주일
  곳: 대전광역시 유성구 성북로 161번길 성북로교회


1. 요한복음 9장 1-10장 42절(10월 1-16금) 얼게 - "예수는 이녁이 누구인가를 밝히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꼴을 일캐우다."


요한복음 9장1-10장 42절(10월)
  1금 NA9:1-7 (1. 2? 3. 4. 5. 67.)
  2금 NA9:8-12 (8? 9. 10? 11. 12.)
  3금 NA9:13-17 (13. 14. 15. 16. 17.)
  4금 NA9:18-23 (1819? 20:21. 22. 23.)
  5금 NA9:24-34 (24. 25. 26? 27? 28:29. 30. 31. 32:33. 34.)
  6금 NA9:35-38 (35? 36? 37. 38.)
  7금 NA9:39-41. (39. 40? 41.)
  8금 NA10:1-6 (1:2. 3. 4:5. 6.)
  9금 NA10:7-10 (7. 8. 9. 10.)
  10금 NA10:11-13 (11:12-13.)
  11금 NA10:14-16 (14,15. 16.)
  12금 NA10:17-18 (17. 18.)
  13금 NA10:19-21 (19. 20? 21?)
  14금 NA10:22-30 (22,23. 24. 25:26. 27,28. 29. 30.)
  15금 NA10:31-39 (31. 32? 33. 34? 35,36? 37:38. 39.)
  16금 NA10:40-42 (40. 41. 42.)


큰 얼게
   1-7금(9:1-41) 날 때부터 소경은 예수가 시킨대로 하여 보게 됨에 따라 사람의 아들인 예수께 맡기다.
      8-15금(10:1-39)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가 아니다."라는 틀에 갇힌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열 마디를 일러주며, 하나님의 나라의 꼴을 넌지시 일깨우다.
   16금(10:40-42)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예수에 대해 한 말이 참이어서  예수께 맡기다.


잔 얼게

  1금 NA9:1-7 (1. 2? 3. 4. 5. 67.) - 예수, 제자들 그리고 날 때부터 소경 - "예수가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 "예수는 스스로 '누리의 빛'이라고 하면서 그를 보내신 이,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 "날 때부터 소경이 예수에 의해 보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 - "예수께 제자들이 (아버지가 그를) 낳을 때부터 소경인 까닭은 어버이나 그가 벗어난짓해서인가(하마르티오)를 묻자, 예수께서 이에 그의 안에서(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게 되려는(ㅎ파네로오) 것이라고 하시고, 나는 '누리의 빛'으로서,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겠다고 하시면서, 소경의 눈들 위에 이긴흙을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니 소경은 보게 되었습니다. -> 여기에서 두 가지 생각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이란 몬(物)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몬(物, 존재)입니다. 사람이 그리 태어난 것은 그의 안에서(그에게)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게 되는데 있습니다. 둘째,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事)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서 무엇을 하거나,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이와같이 하나의 몬(物)인 사람이 하는 일(事)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2금 NA9:8-12 (8? 9. 10? 11. 12.)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이웃들, 그리고 그를 거지로 아는 이들 - "예수라는 사람이 알려지게 됩니다." -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는 소경인 이녁에게 예수가 시킨대로 했더니 보게되었다고  말합니다."-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에게 이웃들과 그를 거지로 아는 이들이 눈이 어떻게 떠졌는가를 묻자. 그는 예수라 하는 사람이 시킨대로 해서 보게 되었다고 맞짝했습니다. -> "사람인 예수가 시킨대로 했더니 보게 되었다"는 것은 시키는 그를 믿고, 그에게 맡기는 모습입니다. 그를 믿고 그에게 맡기는 것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그에게 시킨 일이 이루어집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생각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는 사람입니다. 사람인 예수가 날 때부터 소경을 보게 한 것은 그를 보내신 이의 시킨대로 한 것입니다. 둘째, 날 때부터 소경을 보게 된 것은 그가 예수라는 사람이 시킨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하나님이 시킨대로 하는 것'에 있습니다.
  -> 이와같이 하나님의 시킨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3금 NA9:13-17 (13. 14. 15. 16. 17.)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그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툼이 일어납니다." - 안식일에 예수께서 소경을 보게 했기 때문에 그들이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는데 바리새인들 사이에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다툼이 있는데 세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1) 한 쪽은 "예수가 안식일을 아니 지켰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2) 다른 쪽은 "예수가 소경이 보게 된 자국(표적, 세메이온)을 보였으니 벗어난짓을 한 이(죄인)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3) 이들과 달리,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는 "예수는 선지자이다"라고 말합니다.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절하며(예배하다), 하나님께 종살이하는(섬기다) 일을 잘하려고 나름의 율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만 하나님의 뜻일 지나쳤는데도 그 잣대로 사람을 따지다 보니 예수를 벗어난짓(죄)을 저지른 이로 보고 맙니다. 바리새인은 말하자면 스스로 만들 틀에 갇히고, 올무에 빠진 것입니다.
  -> 이와 달리 나의 잣대로 예수를 아니 재고, 하나님의 잣대로 보아,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선지라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4금 NA9:18-23 (1819? 20:21. 22. 23.) - 유대인들,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의 어버이 -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는 말을 아니(못) 하도록 했습니다." -  유대인들은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고 하는 이는 그들의 모둠살이에서 쫓아내도록 다짐했기에,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의 어버이를 불러 그가 그들의 아들인지, 날때부터 소경이었는지, 누가 그의 눈들을 열게 했는가는 물으면서 예수를 어떻게 여기는가를 떠보는데,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의 어버이는 누가 그의 눈들을 열게 했는지에 관해서는 아니 안다고 말함으로써 예수에 대해 아예 어떤 말도 아니 말합니다. -> 유대인들의 모둠살이는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하지 아니 하도록 다짐을 했습니다. "예수가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는 것을 왜 꺼려했을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나름대로 잘하고(절하며, 받들며, 섬기고, 기리고) 있다는 것을 예수가 그것이 아니라고 꾸중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의 꾸중 - 뉘우치고 물씻김 받는 일이였기에 그것은 따를만 했는데, 예수의 꾸중은 그들의 버릇(성경의 해석의 틀, 예배 및 사회제도, 생활 관습)을 온통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이기에, 오랫동안(오백년의 짬) 쌓아 든든하게 세워진 유대인의 모둠살이(회당문화)를 새로 틀짜야 하는 것이기에, 기득권을 다 내려놓은 것이여야 하기에. 도저히 받아들이기에 벅찼기 때문일 것입니다.
  -> 유대인의 모둠살이와는 달리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를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5금 NA9:24-34 (24. 25. 26? 27? 28:29. 30. 31. 32:33. 34.) 유대인들 그리고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인가, 아닌가?"- 유대인들 "예수는 어디서 온 사람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고,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로 여깁니다. - 유대인들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두번째로 불러, 그에게 스스로 모세의 제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지만,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아니 안다고 하고,  '예수가 벗어난 짓을 한 이(죄인, 하마르톨로스)'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는 '날때부터 소경의 눈을 열게 한 것을 보아 이리 한 이 사람 예수는 벗어난 짓을 한 이(죄인)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닮으려(경건하다. ㅅ데오세베스) 하나님의 뜻대로(ㅅ델레마) 하는(포이에오) 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유대인들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너는 온전히(홀로스) 벗어난 짓(죄) 가운데서 태어나서(겐나오) 우리를 가르치느냐(디다스코)"라고 꾸중하면서 쫓아냅니다. -> 유대인들은 그들이 만들 율법 곧 "안식일을 아니 지키는 것은 벗어난 짓이다"로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 아니 안다고'고 말하며,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난 것이다."로 날때부터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났다고 하면서 쫓아냅니다. 이와같이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절하고 섬기려고 만든 율법으로 남을 따짐(정죄) 함으로써, 이녁이 만든 틀에 갇혀 있는 꼴이요, 한편으로 하나님께 벗어난 짓들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이와같이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로 여기고, 이제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이다."로 여기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6금 NA9:35-38 (35? 36? 37. 38.) - 예수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다" -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쫓아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서 "내가 사람의 아들이다"를 알려주니, 그는 사람의 아들인 예수께 맡긴다고(피스튜오) 말하고, 절합니다(프로스퀴네오).
  -> 이와같이 사람의 아들인 예수께 맡기고, 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7금 NA9:39-41. (39. 40? 41.) 예수와 바리새인들 - "예수는 이 누리를 꾸중하려 (따짐, 심판, 크리마) 왔습니다. - "벗어난 짓(죄)가 있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 아니고, 벗어난 짓(죄)가 없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입니다." -  "벗어난 짓(죄)가 있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 아니고(없는 것이고), 벗어난 짓(죄)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벗어난 짓(죄)가 없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고, 벗어난 짓(죄)에 있는(머물고) 것입니다." - 예수께서 이 누리에 꾸중하려(따짐, 심판, 크리마) 왔는데, 꾸중의 일은 두 가지 일로, 첫째  아니 보는 이를 보게 합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말해지는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난 이(소경으로 태어난 이)'를 이제 벗어난 짓(죄)이 없는 이( 보는 이)가 되게 합니다. 벗어난 짓(죄)이 있다고 하는 이는 벗어난 짓(죄)이 없게 됩니다. 벗어난 짓(죄)이 있다고 하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이와 달리 '본다고 하는 이'는 아니 보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말해지는 '벗어난 짓(죄) 가운데에서 아니 태어난 이(보는 이)'를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난 이(아니 보게 되는 이)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벗어난 짓(죄)이 없다고 하는 이는 벗어난 짓(죄)을 짓는 것입니다. 벗어난 짓(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벗어난 짓(죄)입니다. -> 예수께서 이 누리에(누리를 쪽하여) 꾸중(따짐, 심판, 크리마)하려(을 쪽하여. 에이스), 왔다(에르ㅎ코마이)고 했다. 그의 꾸중(따짐. 심판. 크리마)은 무엇인가?. 그의 꾸중(따짐. 심판. 크리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하는 짓(일)의 잘잘못에 걸맞게 몫을 갚는 것입니다. 그 벗어난 짓에 걸맞게 꾸중합니다. 그래서 벗어난 짓이 무엇이며, 벗어진 짓이 없는 것이 무엇이며, 벗어난 짓에서 어떻게 벗어나는 가(벗어나는 길)을 일깨우고, 벗어난 짓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왔습니다. - 그리하여 예수께서 '예수를 눈으로' 보지(블레포) 못하는 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게 합니다. '예수를 눈으로' 보는 이들은 '예수를 눈으로 보고도 '그리스도'로 아니 보려고 하니' 아예 예수를 '눈으로' 아니 보는(못보는) 눈못보는 이(소. 봉사. 눈먼이. 맹인. 시각장애인, 튀ㅎ플로스)이 되게 합니다. 이것은 이런 뜻을 갖습니다. 눈못보는 이는 예수를 아니(못) 보니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니(못) 본다고 하는 것은 벗어난 짓은 아닙니다. 벗어난 짓(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벗어난 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벗어난 짓(죄)가 있다고 하는 것이 벗어난 짓(죄)에서 벗어나는 것(길)입니다. 한편 눈으로 예수를 보고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니(못) 보는 것, 아니(못) 보려고 하는 것, 아니(못) 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 벗어난 짓입니다. 그처럼 벗어난 짓(죄)가 없다고 것이 벗어난 짓(죄)이다. 벗어난 짓(죄)이 없다고 하는 것이 벗어난 짓(죄)를 짓는 것입니다.
  -> 이와같이 벗어난 짓(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벗어난 짓이 없어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8금 NA10:1-6 (1:2. 3. 4:5. 6.) - 예수 그리고 너희 - 예수의 첫마디 - 양들, 양들의 우리의 문, 문지기, 양들의 양치기  그리고 훔친이, 빼앗는이에 관한 비유 - "양들의 양치기는 문으로 들어가, 이녁의 양들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이끌어내니,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아니, 그를 따라옵니다." - 양들의 우리에는 문이 있고, 문지기는 문을 열어주는데, 양들의 양치기는 그 문으로 들어가나, 훔치는이나 빼았는이는 다른 데로 넘어간다. 양들의 양치기는 양들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서, 이녁의 양들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이끌어내니,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아니, 그를 따라온다. 양들은 다른 이의 목소리를 아니 아니, 그를 아니 따르고, 도리어 토낀다. -> 길이 있으면 길로 가고 문이 있으면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들고 나는 길과 문으로  들고 나도록 이가 제대로 된 양치기입니다. 다른데로 넘나드는 이는 훔치는이요, 빼았는이입니다. 예수라는 나는 땅에 있는 양들의 우리의 문으로만 들어가서 나의 양을 이끌어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합니다.
  -> 이와같이 땅이라는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서 이름을 불러 이끌어 따라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9금 NA10:7-10 (7. 8. 9. 10.) 예수 그리고 너희 - 예수의 둘째마디 - 예수인 "나는 (들면 건져지고, 나면 꼴을 찾고, 끝없는 삶을 얻고 넉넉하게 얻게 하는) 양들의 문이다.나는 문이다."  - 예수인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는 문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가면 건져지고, 들고나면 꼴을 찾습니다. 이러자고 내가 왔은 바 양들이 끝없은 삶을 얻고, 넉넉하게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들의 문인 나의 앞을 지나가는(아니 들어오고 지나치는) 이들은 훔친이, 빼았는이니, 양들이 그를 듣지 아니하니, 오히려 훔치는이는 양들을 훔치고, 죽이고, 없애는 짓을 합니다.  -> 예수께서 양들로 하여금  끝없는 삶을 얻고, 그것도 넉넉하게 얻게하도록 하시려고,  문, 양들의 우리의 문이 되어, 그 문을 들면 건져지고, 나면, 꼴을 찾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훔치는 이나 빼았는 이는 문으로 드나들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나든답니다. 그렇다면 어찌 예수라는 문을 아니 들고 나겠습니까? 예수인 나를 거쳐서 들고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 이와같이 예수인 나를 거쳐서 들고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0금 NA10:11-13 (11:12-13.) 예수 - 예수의 셋째마디 - "예수인 나는 좋은 양치기이다." - 좋은 양치기는 양들의 위에(위하여) 목숨을 내려놓습니다. 이와 달리삯꾼은 양치기가 아니고, 양은 이녁의 양들이 아니니 이리가 오면 양들을 아니 돌보고, 버리고 토낍니다. 이리하여 이리는 양들을 빼앗고, 흩뜨립니다. -> 예수가 좋은 양치기인 까닭은 이녁의 목숨을 양들 위에(휘페르) 놓아, 이녁의 목숨이 양들에 의해(휘페르) 쓰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양들에게 밥입니다.
  -> 이와같이 예수인 내가 그의 목숨을 그의 양들 위에 놓여, 그의 양들에 의해 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1금 NA10:14-16 (14,15. 16.) 예수 - 예수의 넷째마디 - "예수는 이곳 우리에 아니 든 다른 양들을 한 양치기이신 나의 아버지께로 이끈다." - 예수인 나와 나의 아버지가 서로가 아는 사이처럼, 나와 나의 양들 사이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도록 나는 좋은 양치기로서 나의 양들 위에 나의 목숨을 놓는다. 아울러 한 양치기(목자)이신 나의 아버지께서 예수인 나로 하여금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우리에 있는 양들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양치기(목자)이신 나의 아버지께로 이끌게 하신다. -> 예수인 내가 할 일을 나와 아버지 사이처럼 나와 나의 양들사이를 이루고, 다른 우리에 있는 양들을 한 무리가 되어 한 양치기이신 아버지께로 이끄는 것이다. 이로써 아버지, 나, 나의 양들의 사이가 서로 아는 사이를 이루도록,  나는 나의 목숨을 나의 양들 위에 놓아, 나의 양들에 의해 써먹도록 합니다.
  -> 이와같이 나와 이곳 우리에 든 나의 양들 사이. 나와 다른 우리에 든 나의 양들 사이가 나와 아버지 사이처럼 되어 나의 목숨을 나의 양들 위해 놓아. 나의 양들에 의해 나의 목숨이 쓰여지게 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양들을 한 양치기인 나의 아버지께로 이끌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2금 NA10:17-18 (17. 18.) 예수 - 예수의 다섯째마디 -"예수인 나는 스스로 나의 목숨을 놓거나, 잡을 자리심(권세)를 나의 아버지 곁에서 계명으로 잡았다." - 예수인 나는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거나 잡을 자리심을 나의 아버지 곁에서 계명으로 잡았습니다. 그에 따라 예수인 나는 나의 목숨을 다시 잡고자 놓으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 나는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거나 잡을 수 있는데, 나의 목숨을 잡을 수 있는 길은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는 것이다. 이 일을 해 내기 아버지께서 날 그렇게 사랑하시는구나.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으니 아버지께서 날 사랑하시어 나로 나의 목숨을 잡게 하시는도다. 아름답도다 나의 아버지 곁에서 잡은 계명이여!    -> 이와같이 나는 스스로 나의 목숨을 놓고 잡을 자리심을 갖고 있기에, 나의 목숨을 잡고자,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3금 NA10:19-21 (19. 20? 21?) - 유대인들 - "예수는 귀신을 가진 이인가 아닌가?" -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는 귀신을 가지고 있으며 미쳤다"라는 많은 사람들과  "예수는 귀신을 가진 이가 아니므로 소경의 눈을 열었다"라고 어떤 사람들 사이에 말다툼이 있습니다. ->  "예수가 소경의 눈을 열었다."은 일을 보고 누구는 "예수는 귀신을 가지고 있으며 미쳤다"라고 하고, 누구는 "예수는 귀신을 가진 이가 아니므로 소경의 눈을 열었다"고 하는 것으로 갈래지는 것은 어떤 일을 볼 때 이미 보는 틀에 의해 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4금 NA10:22-30 (22,23. 24. 25:26. 27,28. 29. 30.) - 유대인들 그리고 예수 - "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 때는 겨울 수전절, 곳은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를 밝히라고 따지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섯 마디로 맞짝합니다. 첫째, 내가 너희에게 말해도 나에게 아니 맡기지만, 내가 나의 아버지 이름 안에서(으로, 엔) 하는 일(에르곤)이 '나를' 뒷받침합니다(마르뒤레오). 둘째, 당신들은 온몬보다 크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나의 양들이 아닙니다. 나의 양들은 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나의 양들을 알고, 나의 양들은 나를 따릅니다. 셋째, 나는 나의 양들에게 끝없는 삶을 주었기에 끝까지 아니 없어집니다. 넷째,  나의 손에서 나의 양들을 빼았을 이가 없습니다. 다섯째, 나는 아버지와 하나입니다. 온몬보다 크신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 예수께서 하신 일은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일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녁의 일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아버지의 일입니다. 예수 이녁의 일이 곧 아버지의 일입니다. 이로써 이녁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하여 아버지의 일을 하니, 이녁의 하는 일은 "나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를 뒷받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인 나는 온몬보다 크신 아버지와 나와 하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이녁은 예수와 같이 온몬 보다 크신 아버지와 하나되는 길을 알 것같습니다. 이 길은 나가(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하는 것, 아버지의 일이 나의 일로서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이와같이 아버지와 나와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5 NA10:31-39 (31. 32? 33. 34? 35,36? 37:38. 39.) -  유대인들 그리고 예수 - "예수는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여 보내신 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욕되게하는 것(신성모독. 블라스ㅎ페미아)이기 때문에 예수를 돌치려고 하고(리ㅅ다조), 이에 대해 예수께서 하나님을 욕되게하는 것(신성모독)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다섯 가지로 맞짝합니다. 첫째,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하나님들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째, 아버지께서 거룩하게(하기아조) 하시어 누리에(를 쪽하여.에이스) 보내진(아포스텔로) 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셋째.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서부터 나온, 아버지의 일, 좋은 일을 합니다. 넷째, (그럴 수 있는 것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나의 안에 있습니다. 다섯째,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한 일을 보고, 네게 아니 맡겨도, 내가 한 일에 맡기십시오. 그리하여 "예수인 내가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을 뜻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알게 될 것입니다. ->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녁의 누구임을 밝히는 것처럼 나 이녁을 이처럼 말할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에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아버지에서부터 나온 아버지의 일, 좋은 일을 합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안에 계십니다." "너희는 나의 한 일에 맡기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들은 자꾸 되뇌어도 질리지 아니한 말입니다.
  -> 이와같이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나의 안에 있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6금 NA10:40-42 (40. 41. 42.) - 예수 그리고 많은 사람들 - "에수를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다" - 요단 강 저쪽 요한이 처음으로 물씻긴 곳에 있는 많은 이들이 요한이 낌새(자국, 표적)을 아니 하였어도, 예수에 대해 한 말은 참이라고 여겨, 예수를 쪽하여(에이스) 맡깁니다(믿다. 피스튜오). -> 예수가 참이니, 그에 대한 말은 참이고, 참인 예수, 참인 예수에 대한 참 말은 많은 사람들으로 하여금 예수께 맡기게 합니다. 이리하여 나 이녁이 예수께 맡기는 것은 나 이녁이 마침내 참으로 가는 것이고, 나 이녁이 참이 됩니다.
  -> 이와 같이 예수가 참이니, 예수에 대한 말이 참이고, 이 참 때문에 예수께 맡김으로써 맡기는 이녁 또한 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 고요의 한마디 - 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 하나의 몬(物)인 사람이 하는 일(事)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2. 하나님의 시킨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3. 나의 잣대로 예수를 아니 재고, 하나님의 잣대로 보아,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선지라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4.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를 말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5.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로 여기고, 이제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이다."로 여기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6. 사람의 아들인 예수께 맡기고, 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7. 벗어난 짓(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벗어난 짓이 없어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8. 땅이라는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서 이름을 불러 이끌어 따라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9. 예수인 나를 거쳐서 들고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0. 예수인 내가 그의 목숨을 그의 양들 위에 놓여, 그의 양들에 의해 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1. 나와 이곳 우리에 든 나의 양들 사이. 나와 다른 우리에 든 나의 양들 사이가 나와 아버지 사이처럼 되어 나의 목숨을 나의 양들 위해 놓아. 나의 양들에 의해 나의 목숨이 쓰여지게 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양들을 한 양치기인 나의 아버지께로 이끌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2. 나는 스스로 나의 목숨을 놓고 잡을 자리심을 갖고 있기에, 나의 목숨을 잡고자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3. -
  14. 아버지와 나와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5.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나의 안에 있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16. 예수가 참이니, 예수에 대한 말이 참이고, 이 참 때문에 예수께 맡김으로써 맡기는 이녁 또한 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나라가 홀로인 나, 바께(남편)과 아내가 이룬 집, 그리고 집들이 모여 이룬 교회라는 모둠살이에서 이루어져서 이 땅에 꽉채워질 때가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일까요? 그 때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를 받아 아버지 하나님께 받치는 가요? 이것을 내다보고 사는 것이 바람(소망)인가요?


2. 요한복음 9장1-10장 42절(10월) 얼게 그리고 개정개역판(1998) - "예수는 이녁이 누구인가를 밝히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꼴을 일캐우다."
  -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나의 안에, 나와 아버지은 하나인 것처럼, 나와 이곳 우리에 있는 나의 양들 사이. 나와 이곳 우리에 아니 있는 양들 사이가 그러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1금 NA9:1-7 (1. 2? 3. 4. 5. 67.) - 예수, 제자들 그리고 날 때부터 소경 - "예수가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 "예수는 스스로 '누리의 빛'이라고 하면서 그를 보내신 이,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 "날 때부터 소경이 예수에 의해 보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 - "예수께 제자들이 (아버지가 그를) 낳을 때부터 소경인 까닭은 어버이나 그가 벗어난짓해서인가(하마르티오)를 묻자, 예수께서 이에 그의 안에서(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이 나타나게 되려는(ㅎ파네로오) 것이라고 하시고, 나는 '누리의 빛'으로서,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겠다고 하시면서, 소경의 눈들 위에 이긴흙을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게 하니 소경은 보게 되었습니다. -> 여기에서 두 가지 생각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이란 몬(物)은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몬(物, 존재)입니다. 사람이 그리 태어난 것은 그의 안에서(그에게)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게 되는데 있습니다. 둘째, 그래서 사람이 하는 일(事)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아서 무엇을 하거나,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는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이와같이 하나의 몬(物)인 사람이 하는 일(事)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12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시다
9: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게네데) 때부터 맹인(튀ㅎ플로스)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아버지가 낳다. 사내가 낳다. 겐나오) 것이 누구의 죄(하마르타노)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고뉴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르곤)을 나타내고자(ㅎ파네로오)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헤오스) 나를 보내신(펨포) 이의 일(에르곤)을 우리가 하여야(에르가조마이)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에르가조마이)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호탄) 세상(코스모스)의 빛(ㅎ포스)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프튀스마)을 뱉어(프튀오) 진흙(펠로스)을 이겨(포이에오) 그의 눈(옾ㅅ달모스)에 바르시고(에피ㅎ크리오)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콜륌베ㅅ드라)에 가서(휲아고) 씻으라(닢토)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앞에르ㅎ코마이) 씻고(닢토) 밝은 눈으로(블레포) 왔더라(에르ㅎ코마이)


  2금 NA9:8-12 (8? 9. 10? 11. 12.)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이웃들, 그리고 그를 거지로 아는 이들 - "예수라는 사람이 알려지게 됩니다." -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는 소경인 이녁에게 예수가 시킨대로 했더니 보게되었다고  말합니다."-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에게 이웃들과 그를 거지로 아는 이들이 눈이 어떻게 떠졌는가를 묻자. 그는 예수라 하는 사람이 시킨대로 해서 보게 되었다고 맞짝했습니다. -> "사람인 예수가 시킨대로 했더니 보게 되었다"는 것은 시키는 그를 믿고, 그에게 맡기는 모습입니다. 그를 믿고 그에게 맡기는 것은 그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가 그에게 시킨 일이 이루어집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 생각거리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는 사람입니다. 사람인 예수가 날 때부터 소경을 보게 한 것은 그를 보내신 이의 시킨대로 한 것입니다. 둘째, 날 때부터 소경을 보게 된 것은 그가 예수라는 사람이 시킨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하나님이 시킨대로 하는 것'에 있습니다.
  -> 이와같이 하나님의 시킨대로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8 이웃(게이톤)  사람들과 전에(프로테론) 그가 걸인인(프로스아이테오) 것을 보았던(ㅅ데오레오)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카ㅅ데마이) 구걸하던(프로스아이테오) 자가 아니냐
9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호모이오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10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아노이고)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펠로스)을 이겨(포이에오) 내 눈에 바르고(에피ㅎ크리오)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휲아고) 씻으라(닢토)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아나블레포)
12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3금 NA9:13-17 (13. 14. 15. 16. 17.)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그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다툼이 일어납니다." - 안식일에 예수께서 소경을 보게 했기 때문에 그들이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데리고 갔는데 바리새인들 사이에 예수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다툼이 있는데 세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1) 한 쪽은 "예수가 안식일을 아니 지켰으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2) 다른 쪽은 "예수가 소경이 보게 된 자국(표적, 세메이온)을 보였으니 벗어난짓을 한 이(죄인)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3) 이들과 달리,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는 "예수는 선지자이다"라고 말합니다. ->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께 절하며(예배하다), 하나님께 종살이하는(섬기다) 일을 잘하려고 나름의 율법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만 하나님의 뜻일 지나쳤는데도 그 잣대로 사람을 따지다 보니 예수를 벗어난짓(죄)을 저지른 이로 보고 맙니다. 바리새인은 말하자면 스스로 만들 틀에 갇히고, 올무에 빠진 것입니다.
  -> 이와 달리 나의 잣대로 예수를 아니 재고, 하나님의 잣대로 보아,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 선지라고 보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34 보게 된 맹인과 바리새인들
9:13 그들이 전에(포테)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아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14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삽바톤)이라
15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에로타오)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테레오)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1)표적(세메이온)을 행하겠느냐(포이에오) 하여 그들 중에 분쟁(스ㅎ키스마)이 있었더니 또는 이적
17 이에 맹인(튀ㅎ플로스)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아노이고)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프롭헤테스)니이다 하니


  4금 NA9:18-23 (1819? 20:21. 22. 23.) - 유대인들,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의 어버이 -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는 말을 아니(못) 하도록 했습니다." -  유대인들은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고 하는 이는 그들의 모둠살이에서 쫓아내도록 다짐했기에,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의 어버이를 불러 그가 그들의 아들인지, 날때부터 소경이었는지, 누가 그의 눈들을 열게 했는가는 물으면서 예수를 어떻게 여기는가를 떠보는데,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의 어버이는 누가 그의 눈들을 열게 했는지에 관해서는 아니 안다고 말함으로써 예수에 대해 아예 어떤 말도 아니 말합니다. -> 유대인들의 모둠살이는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고 말하지 아니 하도록 다짐을 했습니다. "예수가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라는 것을 왜 꺼려했을까? 그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나름대로 잘하고(절하며, 받들며, 섬기고, 기리고) 있다는 것을 예수가 그것이 아니라고 꾸중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어 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의 꾸중 - 뉘우치고 물씻김 받는 일이였기에 그것은 따를만 했는데, 예수의 꾸중은 그들의 버릇(성경의 해석의 틀, 예배 및 사회제도, 생활 관습)을 온통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이기에, 오랫동안(오백년의 짬) 쌓아 든든하게 세워진 유대인의 모둠살이(회당문화)를 새로 틀짜야 하는 것이기에, 기득권을 다 내려놓은 것이여야 하기에. 도저히 받아들이기에 벅찼기 때문일 것입니다.
  -> 유대인의 모둠살이와는 달리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를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18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아나블레포) 것을 믿지(피스튜오) 아니하고 그 부모(고뉴스)를 불러(ㅎ포네오) 묻되(에로타오)
19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겐나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20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겐나오) 것을 아나이다
2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아노이고)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에로타오)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헬리키아)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에데)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호몰로게오) 자는 출교(아포쉰아고고스)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쉰티ㅅ데미)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ㅎ포베오)
23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헬리키아) 그에게 물어 보소서 하였더라


  5금 NA9:24-34 (24. 25. 26? 27? 28:29. 30. 31. 32:33. 34.) 유대인들 그리고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인가, 아닌가?"- 유대인들 "예수는 어디서 온 사람이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하고,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로 여깁니다. - 유대인들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두번째로 불러, 그에게 스스로 모세의 제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지만, 예수가 어디서 왔는지 아니 안다고 하고,  '예수가 벗어난 짓을 한 이(죄인, 하마르톨로스)'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는 '날때부터 소경의 눈을 열게 한 것을 보아 이리 한 이 사람 예수는 벗어난 짓을 한 이(죄인)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닮으려(경건하다. ㅅ데오세베스) 하나님의 뜻대로(ㅅ델레마) 하는(포이에오) 이요,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유대인들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너는 온전히(홀로스) 벗어난 짓(죄) 가운데서 태어나서(겐나오) 우리를 가르치느냐(디다스코)"라고 꾸중하면서 쫓아냅니다. -> 유대인들은 그들이 만들 율법 곧 "안식일을 아니 지키는 것은 벗어난 짓이다"로 '예수는 어디서 왔는지 아니 안다고'고 말하며,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난 것이다."로 날때부터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났다고 하면서 쫓아냅니다. 이와같이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을 잘 절하고 섬기려고 만든 율법으로 남을 따짐(정죄) 함으로써, 이녁이 만든 틀에 갇혀 있는 꼴이요, 한편으로 하나님께 벗어난 짓들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 이와같이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다."로 여기고, 이제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이다."로 여기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듀테로스) 불러(ㅎ포네오)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디도미)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하마르톨로스) 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아르티) 보는 그것이니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마데테스)가 되려 하나이까
28 그들이 욕하여(로이도레오) 이르되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29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포ㅅ덴)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30 그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상하다 (ㅅ다우마스토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도다
31 하나님이 죄인(하마르톨로스)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ㅅ데오세베스) 그의 뜻대로(ㅅ델레마) 행하는(포이에오)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32 창세(아이온) 이후로(엨) 맹인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33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파라)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34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온전히(홀로스) 죄 가운데서 나서(겐나오) 우리를 가르치느냐(디다스코) 하고 이에 쫓아내어(엨소)(엨발로) 보내니라


  6금 NA9:35-38 (35? 36? 37. 38.) - 예수와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 - "예수는 사람의 아들이다" -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소경이었다가 보게 된 이를 쫓아냈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가서 "내가 사람의 아들이다"를 알려주니, 그는 사람의 아들인 예수께 맡긴다고(피스튜오) 말하고, 절합니다(프로스퀴네오).
  -> 이와같이 사람의 아들인 예수께 맡기고, 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5-41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9:35 예수께서 그들이 그 사람을 쫓아냈다(엨소)(엨발로)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찾다. 휴리스코) 이르시되 네가 2)인자를 믿느냐[사람의 아들을 쪽하여(에이스) 맡기느냐(피스튜오)?] (어떤 사본에, 하나님의 아들을)
36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그를 쪽하여(에이스)  맡기고자합니다(피스튜오)]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호라오) 지금 너와(메타) 말하는(랄레오)  자가 그이니라
38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맡기다. 피스튜오) 하고(ㅎ페미) 절하는지라(프로스퀴네오)[그에게 절했다(프로스퀴네오)].

 
  7금 NA9:39-41. (39. 40? 41.) 예수와 바리새인들 - "예수는 이 누리를 꾸중하려 (따짐, 심판, 크리마) 왔습니다. - "벗어난 짓(죄)가 있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 아니고, 벗어난 짓(죄)가 없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입니다." -  "벗어난 짓(죄)가 있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 아니고(없는 것이고), 벗어난 짓(죄)에서 벗어나는 길이고, 벗어난 짓(죄)가 없다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고, 벗어난 짓(죄)에 있는(머물고) 것입니다." - 예수께서 이 누리에 꾸중하려(따짐, 심판, 크리마) 왔는데, 꾸중의 일은 두 가지 일로, 첫째  아니 보는 이를 보게 합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말해지는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난 이(소경으로 태어난 이)'를 이제 벗어난 짓(죄)이 없는 이( 보는 이)가 되게 합니다. 벗어난 짓(죄)이 있다고 하는 이는 벗어난 짓(죄)이 없게 됩니다. 벗어난 짓(죄)이 있다고 하는 것이 벗어난 짓(죄)이 없는 것입니다. 둘째, 이와 달리 '본다고 하는 이'는 아니 보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에 따라 말해지는 '벗어난 짓(죄) 가운데에서 아니 태어난 이(보는 이)'를 벗어난 짓(죄) 가운데 태어난 이(아니 보게 되는 이)로 되게 하는 것입니다. 벗어난 짓(죄)이 없다고 하는 이는 벗어난 짓(죄)을 짓는 것입니다. 벗어난 짓(죄)이 없다고 하는 것은 벗어난 짓(죄)입니다. -> 예수께서 이 누리에(누리를 쪽하여) 꾸중(따짐, 심판, 크리마)하려(을 쪽하여. 에이스), 왔다(에르ㅎ코마이)고 했다. 그의 꾸중(따짐. 심판. 크리마)은 무엇인가?. 그의 꾸중(따짐. 심판. 크리마)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 하는 짓(일)의 잘잘못에 걸맞게 몫을 갚는 것입니다. 그 벗어난 짓에 걸맞게 꾸중합니다. 그래서 벗어난 짓이 무엇이며, 벗어진 짓이 없는 것이 무엇이며, 벗어난 짓에서 어떻게 벗어나는 가(벗어나는 길)을 일깨우고, 벗어난 짓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왔습니다. - 그리하여 예수께서 '예수를 눈으로' 보지(블레포) 못하는 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게 합니다. '예수를 눈으로' 보는 이들은 '예수를 눈으로 보고도 '그리스도'로 아니 보려고 하니' 아예 예수를 '눈으로' 아니 보는(못보는) 눈못보는 이(소. 봉사. 눈먼이. 맹인. 시각장애인, 튀ㅎ플로스)이 되게 합니다. 이것은 이런 뜻을 갖습니다. 눈못보는 이는 예수를 아니(못) 보니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니(못) 본다고 하는 것은 벗어난 짓은 아닙니다. 벗어난 짓(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벗어난 짓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벗어난 짓(죄)가 있다고 하는 것이 벗어난 짓(죄)에서 벗어나는 것(길)입니다. 한편 눈으로 예수를 보고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아니(못) 보는 것, 아니(못) 보려고 하는 것, 아니(못) 보는 것처럼 하는 것이 벗어난 짓입니다. 그처럼 벗어난 짓(죄)가 없다고 것이 벗어난 짓(죄)이다. 벗어난 짓(죄)이 없다고 하는 것이 벗어난 짓(죄)를 짓는 것입니다.
  -> 이와같이 벗어난 짓(죄)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리하여 벗어난 짓이 없어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크리마)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에르ㅎ코마이)[누리를 쪽아여 왔다] 보지(에르ㅎ코마이)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튀ㅎ플로스.튑흘로스)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4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하마르티아. 하말티아) 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머물다.메노)


  8금 NA10:1-6 (1:2. 3. 4:5. 6.) - 예수 그리고 너희 - 예수의 첫마디 - 양들, 양들의 우리의 문, 문지기, 양들의 양치기  그리고 훔친이, 빼앗는이에 관한 비유 - "양들의 양치기는 문으로 들어가, 이녁의 양들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이끌어내니,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아니, 그를 따라옵니다." - 양들의 우리에는 문이 있고, 문지기는 문을 열어주는데, 양들의 양치기는 그 문으로 들어가나, 훔치는이나 빼았는이는 다른 데로 넘어간다. 양들의 양치기는 양들의 우리의 문으로 들어가서, 이녁의 양들마다 그의 이름을 불러, 이끌어내니, 양들은 그의 목소리를 아니, 그를 따라온다. 양들은 다른 이의 목소리를 아니 아니, 그를 아니 따르고, 도리어 토낀다. -> 길이 있으면 길로 가고 문이 있으면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대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들고 나는 길과 문으로  들고 나도록 이가 제대로 된 양치기입니다. 다른데로 넘나드는 이는 훔치는이요, 빼았는이입니다. 예수라는 나는 땅에 있는 양들의 우리의 문으로만 들어가서 나의 양을 이끌어내고,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합니다.
  -> 이와같이 땅이라는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서 이름을 불러 이끌어 따라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6양의 우리 비유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ㅅ뒤라)을 통하여 양(양들,프로바톤)의 우리(아웈레)에 들어가지(에이스에르ㅎ코마이) 아니하고 다른 데로(알라ㅎ코ㅅ덴) 넘어가는(아나바이노) 자는 절도(클렙테스)며 강도(레스테스)요
2 문(ㅅ뒤라)으로 들어가는(에이스에르ㅎ코마이) 이는 양(양들.(프로바톤)의 목자(포이멘)라
3 문지기(ㅅ뒤로로스)는 그를 위하여[그에게] 문을 열고(아노이고) 양[양들]은 그의 음성(ㅎ프네.프호네)을 듣나니 그가 자기(이디오스)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ㅎ프네오) 인도하여 내느니라(엨스아고)
4 자기(이디오스) 양을 다 내놓은(엨발로) 후에 (호탄) 앞서(엠프로스ㅅ덴) 가면(포류오마이) 양들이 그의 음성(ㅎ프네)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아콜루ㅅ데오)
5 타인(알로트리오스)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아콜루ㅅ데오)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ㅎ퓨고).
6 예수께서 이 비유(파로이미아)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기노스코) 못하니라


  9금 NA10:7-10 (7. 8. 9. 10.) 예수 그리고 너희 - 예수의 둘째마디 - 예수인 "나는 (들면 건져지고, 나면 꼴을 찾고, 끝없는 삶을 얻고 넉넉하게 얻게 하는) 양들의 문이다.나는 문이다."  - 예수인 "나는 양들의 문이다. 나는 문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가면 건져지고, 들고나면 꼴을 찾습니다. 이러자고 내가 왔은 바 양들이 끝없은 삶을 얻고, 넉넉하게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들의 문인 나의 앞을 지나가는(아니 들어오고 지나치는) 이들은 훔친이, 빼았는이니, 양들이 그를 듣지 아니하니, 오히려 훔치는이는 양들을 훔치고, 죽이고, 없애는 짓을 합니다.  -> 예수께서 양들로 하여금  끝없는 삶을 얻고, 그것도 넉넉하게 얻게하도록 하시려고,  문, 양들의 우리의 문이 되어, 그 문을 들면 건져지고, 나면, 꼴을 찾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훔치는 이나 빼았는 이는 문으로 드나들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나든답니다. 그렇다면 어찌 예수라는 문을 아니 들고 나겠습니까? 예수인 나를 거쳐서 들고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 이와같이 예수인 나를 거쳐서 들고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21선한 목자
10: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팔린)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양들.프로바톤)의 문(ㅅ뒤라)이라
8 나보다 먼저(앞에, 앞으로. 프로) 온(오다.가다. 지나가다.에르ㅎ코마이) 자는 다 절도(클렙테스)요 강도(레스테스)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ㅅ뒤라)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거쳐서. 디아) 들어가면(에이스에르ㅎ코마이) 구원을 받고(건지다.소조) 또는 들어가며(에이스에르ㅎ코마이) 나오며(엨스에르ㅎ코마이) 꼴(노메)을 얻으리라(휴리스코)
10 도둑(클렙테스)이 오는(에르ㅎ코마이) 것은 도둑질하고(클렢토) 죽이고(ㅅ뒤오) 멸망시키려는(앞올뤼미) 것뿐이요 내가 온(에르ㅎ코마이) 것은 양으로[그들이] 생명(삶.조에)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페리쏘스) 얻게 하려는 것이라


  10금 NA10:11-13 (11:12-13.) 예수 - 예수의 셋째마디 - "예수인 나는 좋은 양치기이다." - 좋은 양치기는 양들의 위에(위하여) 목숨을 내려놓습니다. 이와 달리삯꾼은 양치기가 아니고, 양은 이녁의 양들이 아니니 이리가 오면 양들을 아니 돌보고, 버리고 토낍니다. 이리하여 이리는 양들을 빼앗고, 흩뜨립니다. -> 예수가 좋은 양치기인 까닭은 이녁의 목숨을 양들 위에(휘페르) 놓아, 이녁의 목숨이 양들에 의해(휘페르) 쓰이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양들에게 밥입니다.
  -> 이와같이 예수인 내가 그의 목숨을 그의 양들 위에 놓여, 그의 양들에 의해 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11 나는 선(아름다운.좋은.칼로스)한 목자(양치기.포이멘)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휘페르)[양들의 위에(휘페르)] 목숨(프쉬ㅎ케)을 버리거니와(내려놓다.티ㅅ데미)
12 삯꾼(미스ㅅ도토스)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이디오스) 양이 아니라 이리(뤼코스)가 오는(에르ㅎ코마이) 것을 보면(ㅅ데오레오) 양을 버리고(버려두다.아ㅎ피에미) 달아나나니(토낀다.ㅎ퓨고)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빼앗다.하르파조) 또 헤치느니라(흩뜨리다.스코르피조)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미스ㅅ도토스)인 까닭에 양을(양들에 대하여.페리) 돌보지(멜레이) 아니함이나


  11금 NA10:14-16 (14,15. 16.) 예수 - 예수의 넷째마디 - "예수는 이곳 우리에 아니 든 다른 양들을 한 양치기이신 나의 아버지께로 이끈다." - 예수인 나와 나의 아버지가 서로가 아는 사이처럼, 나와 나의 양들 사이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도록 나는 좋은 양치기로서 나의 양들 위에 나의 목숨을 놓는다. 아울러 한 양치기(목자)이신 나의 아버지께서 예수인 나로 하여금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우리에 있는 양들이 나의 목소리를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양치기(목자)이신 나의 아버지께로 이끌게 하신다. -> 예수인 내가 할 일을 나와 아버지 사이처럼 나와 나의 양들사이를 이루고, 다른 우리에 있는 양들을 한 무리가 되어 한 양치기이신 아버지께로 이끄는 것이다. 이로써 아버지, 나, 나의 양들의 사이가 서로 아는 사이를 이루도록,  나는 나의 목숨을 나의 양들 위에 놓아, 나의 양들에 의해 써먹도록 합니다.
  -> 이와같이 나와 이곳 우리에 든 나의 양들 사이. 나와 다른 우리에 든 나의 양들 사이가 나와 아버지 사이처럼 되어 나의 목숨을 나의 양들 위해 놓아. 나의 양들에 의해 나의 목숨이 쓰여지게 하고, 그리하여 마침내 나의 양들을 한 양치기인 나의 아버지께로 이끌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나의 것들.에모스) 알고 양도(나의 것들)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카ㅅ도스) 나는 양을 위하여(휘페르)[양들의 위에.휘페르]너 목숨(프쉬ㅎ케)을 버리노라(티ㅅ데마)
16 또 이 우리(아울레)에(엨) 들지 아니한 다른(알로스)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아고)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포이므네)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그가(한 양치기) ‘나를 이끄는 것’ 또는 ‘나로 하여금 이끄는 것’을 해야 한다.(?)]


  12금 NA10:17-18 (17. 18.) 예수 - 예수의 다섯째마디 -"예수인 나는 스스로 나의 목숨을 놓거나, 잡을 자리심(권세)를 나의 아버지 곁에서 계명으로 잡았다." - 예수인 나는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거나 잡을 자리심을 나의 아버지 곁에서 계명으로 잡았습니다. 그에 따라 예수인 나는 나의 목숨을 다시 잡고자 놓으니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 나는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거나 잡을 수 있는데, 나의 목숨을 잡을 수 있는 길은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는 것이다. 이 일을 해 내기 아버지께서 날 그렇게 사랑하시는구나.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으니 아버지께서 날 사랑하시어 나로 나의 목숨을 잡게 하시는도다. 아름답도다 나의 아버지 곁에서 잡은 계명이여!
  -> 이와같이 나는 스스로 나의 목숨을 놓고 잡을 자리심을 갖고 있기에, 나의 목숨을 잡고자, 나의 목숨을 스스로 놓는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17 내가 내 목숨(프쉬ㅎ케을 버리는(티ㅅ데미)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팔린) 얻기(람바노)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아가파오
18 이를 내게서(아포) 빼앗는(아이로)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아포) 버리노라(티ㅅ데미) 나는 버릴(티ㅅ데미) 권세(자리심. 엨수시아)도 있고 다시(팔린) 얻을(람바노)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곁에서.파라) 받았노라(람바노) 하시니라


  13금 NA10:19-21 (19. 20? 21?) - 유대인들 - "예수는 귀신을 가진 이인가 아닌가?" -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는 귀신을 가지고 있으며 미쳤다"라는 많은 사람들과  "예수는 귀신을 가진 이가 아니므로 소경의 눈을 열었다"라고 어떤 사람들 사이에 말다툼이 있습니다. ->  "예수가 소경의 눈을 열었다."은 일을 보고 누구는 "예수는 귀신을 가지고 있으며 미쳤다"라고 하고, 누구는 "예수는 귀신을 가진 이가 아니므로 소경의 눈을 열었다"고 하는 것으로 갈래지는 것은 어떤 일을 볼 때 이미 보는 틀에 의해 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디아) 유대인 중에 다시(팔린) 분쟁(스ㅎ키스마)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다이모니온) 들려(가지다, 에ㅎ코) 미쳤거늘(마이노마이) 어찌하여(티) 그 말을[속격. 그의 것으로부터.]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ㅎ레마)은 귀신 들린(귀신가진.다이모니조마이)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튀ㅎ플로스)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14금 NA10:22-30 (22,23. 24. 25:26. 27,28. 29. 30.) - 유대인들 그리고 예수 - "예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 - 때는 겨울 수전절, 곳은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를 밝히라고 따지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섯 마디로 맞짝합니다. 첫째, 내가 너희에게 말해도 나에게 아니 맡기지만, 내가 나의 아버지 이름 안에서(으로, 엔) 하는 일(에르곤)이 '나를' 뒷받침합니다(마르뒤레오). 둘째, 당신들은 온몬보다 크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나의 양들이 아닙니다. 나의 양들은 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나는 나의 양들을 알고, 나의 양들은 나를 따릅니다. 셋째, 나는 나의 양들에게 끝없는 삶을 주었기에 끝까지 아니 없어집니다. 넷째,  나의 손에서 나의 양들을 빼았을 이가 없습니다. 다섯째, 나는 아버지와 하나입니다. 온몬보다 크신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 예수께서 하신 일은 나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일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녁의 일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 아버지의 일입니다. 예수 이녁의 일이 곧 아버지의 일입니다. 이로써 이녁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하여 아버지의 일을 하니, 이녁의 하는 일은 "나 예수는 기름부어진 이, 그리스도이다,"를 뒷받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인 나는 온몬보다 크신 아버지와 나와 하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는 이녁은 예수와 같이 온몬 보다 크신 아버지와 하나되는 길을 알 것같습니다. 이 길은 나가(내가) 아버지의 이름으로 일하는 것, 아버지의 일이 나의 일로서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 이와같이 아버지와 나와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42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 하다
10: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페리파테오)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퀴클로오) 이르되 당신이 언제(포테)까지나(헤오스) 우리 마음(목숨.프쉬ㅎ케)을 의혹하게(집어들다.아이로)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파레시아)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맡기다.피스튜오)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안에서.엔) 행하는(포이에오) 일들(에르곤)이 나를 증거하는(마르뒤레오)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나의 것들.에모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기노스코)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아콜루ㅅ데오)
28 내가 그들에게 영(아이오니오스)생(조에)[끝없는(아이오니오스) 삶(조에)]을 주노니(디도미) 영원히(끝까지.에이스) 멸망하지(앞올뤼미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엨) 빼앗을(하르파조) 자가 없느니라
29 1)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메이존) 아무도(우데이스) 아버지 손에서(엨) 빼앗을(하르파조) 수 없느니라 어떤 사본에,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만물보다 크매
30 나와(카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헨) 하신대


  15금 NA10:31-39 (31. 32? 33. 34? 35,36? 37:38. 39.) -  유대인들 그리고 예수 - "예수는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여 보내신 이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을 욕되게하는 것(신성모독. 블라스ㅎ페미아)이기 때문에 예수를 돌치려고 하고(리ㅅ다조), 이에 대해 예수께서 하나님을 욕되게하는 것(신성모독)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다섯 가지로 맞짝합니다. 첫째,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하나님들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둘째, 아버지께서 거룩하게(하기아조) 하시어 누리에(를 쪽하여.에이스) 보내진(아포스텔로) 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셋째. 그래서 나는 아버지에서부터 나온, 아버지의 일, 좋은 일을 합니다. 넷째, (그럴 수 있는 것은)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나의 안에 있습니다. 다섯째,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한 일을 보고, 네게 아니 맡겨도, 내가 한 일에 맡기십시오. 그리하여 "예수인 내가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을 뜻하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알게 될 것입니다. ->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녁의 누구임을 밝히는 것처럼 나 이녁을 이처럼 말할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이렇게 말하라고 하십니다.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에 '나는 하나님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나는 아버지에서부터 나온 아버지의 일, 좋은 일을 합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나의 아버지는 나의 안에 계십니다." "너희는 나의 한 일에 맡기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이 말들은 자꾸 되뇌어도 질리지 아니한 말입니다.
  -> 이와같이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나의 안에 있는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31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32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엨) 여러 가지 선한(칼로스) 일(에르곤)로 너희에게 보였거늘 (데이크뉘미) 그 중에 어떤(포이오스) 일(에르곤)로(디아) 나를 돌로 치려(리ㅅ다조) 하느냐
33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로 말미암아(페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리ㅅ다조)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으로(블라스ㅎ페미아) 인함이니(페리)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세아우트) 하나님이라 함이로라(포이에오)[너는 너스스로를(세아우느) 하나님을 만든다(포이에오)]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ㄱ)율법에 기록된(그라포) 바 내가 너희를 신[하나님들.ㅅ데오스)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시 82:6
35 성경(그라ㅎ페)은 폐하지(뤼오)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프로스) 사람들을 신(하나님들, 복수.ㅅ데우스)이라 하셨거든
36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하기아조) 하사 세상에(누리를 쪽하여.에이스) 보내신(아포스텔로)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에포) 것으로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블라스ㅎ페메오) 하느냐
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일들.에르곤)을 행하지(포이에오)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명령.너희는 나에게(여격) 아니 맡겨라. 피스튜오)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너희는 그일들에게 맡겨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너희가 알았도록(동.가.2과.능.2복), 너희가 알도록(동.가.현.능.2복.) ]
39 그들이 다시(팔린) 예수를 잡고자(피아조) (제테오)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엨) 나가시니라(엨스에르ㅎ코마이)


  16금 NA10:40-42 40. 41. 42.) - 예수 그리고 많은 사람들 - "예수를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다" - 요단 강 저쪽 요한이 처음으로 물씻긴 곳에 있는 많은 이들이 요한이 낌새(자국, 표적)을 아니 하였어도, 예수에 대해 한 말은 참이라고 여겨, 예수를 쪽하여(에이스) 맡깁니다(믿다. 피스튜오). -> 예수가 참이니, 그에 대한 말은 참이고, 참인 예수, 참인 예수에 대한 참 말은 많은 사람들으로 하여금 예수께 맡기게 합니다. 이리하여 나 이녁이 예수께 맡기는 것은 나 이녁이 마침내 참으로 가는 것이고, 나 이녁이 참이 됩니다.
  -> 이와 같이 예수가 참이니, 예수에 대한 말이 참이고, 이 참 때문에 예수께 맡김으로써 맡기는 이녁 또한 참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0:40 다시(팔린) 요단 강 저편(페란) 요한이 처음으로(프로톤) 2)세례 베풀던(밥티조) 곳에 가사(앞에르ㅎ코마이) 거기 거하시니(메노) (헬, 또는 침례)
41 많은 사람이 왔다가(에르ㅎ코마이) 말하되 요한은 아무 3)표적(세메이온)도 행하지(포이에오)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페리) 말한(에포) 것은 다 참이라(알레ㅅ데스) 하더라 또는 이적
42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예수를 쪽하여(에이스) 맡긴다(피스튜오)]  


끝.